김성복 한성대 교수협의회장(글로벌패션산업학부)

8월 23일 교육부는 전국대학의 사활이 걸린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새 교육부 장관의 취임으로 박근혜 정부의 1주기 교육부 대학 평가와는 다른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기존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내용상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결과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사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사교련) 이사로서 필자는 교육부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저지하고자 작년 가을 그 폐해를 삽화가와 함께 풍자화로 시각화했었다. 이 풍자화는 구조개혁 평가라는 우리에 갇힌 대학이 교육부가 던져주는 돈에 유인돼 독이 든 먹이를 받아먹고 괴물이 되고, 교수와 학생들은 이 괴물에 짓눌려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이미지로 구성됐다. 당시 교육부는 다수의 대학들과 사교련을 비롯한 관련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개명하고 평가지표 개선의 의지를 보였기에 이 풍자화는 세상에 유포되지 않은 채 1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 진단 결과는 이 풍자화가 현실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고등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이번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 오히려 대학을 괴물로 만든 것이 아닌지 진단이 시급하다. 진단이 제대로 돼야 제대로 된 처방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큰 틀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단과 처방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이번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의 진단지표는 대한민국 대학의 전국 분포지형과 지방분권화 및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교육부는 권역별 구분 진단을 통해 고려했다고 하겠지만, 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이 1단계 진단지표 75점 중 14점이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원감축이 지방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에 발표된 진단 결과는 자율개선대학에서 탈락해 재정지원 전면제한과 정원감축 대상인 11개 대학 중 82%가 비수도권 지방대라는 사실은 애초에 불공정한 게임임을 입증한다. 지방대학의 폐교는 지역 경제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이번 교육부 진단에서 대학 내 ‘부정비리 감점 페널티 방침’은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대학에서 부정과 비리는 주로 법인이나 실세 총장과 그 주변세력들이 저지른다. 그런데 그 책임을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것은 부정비리를 숨기고 면죄부를 주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설사 부정비리를 알고 있다 해도 양심고백이나 고발 등으로 적극 대응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율개선대학 선정 탈락을 조장하는 ‘해교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대학의 부정비리 세력들은 이 방침을 빌미로 마음 놓고 부정비리를 저지르고, 불의에 맞서는 교원들을 거침없이 중징계해 구성원들을 부정비리에 눈감고 함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은 대학정원 감축의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나, 21세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전국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자는 취지를 무색하게 한 ‘부실 진단’이었다. 교육부가 대학을 괴물로 만들어 죽이자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대학의 기본역량을 강화해 고등교육을 살리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대학의 구조개혁과 건강성 회복을 최우선해야 한다. 각 대학의 지역성 및 특성을 고려한 지표, 부정비리를 저지른 자들을 드러내는 지표와 민주총장 선출제도 지표를 포함하는 등 대학의 지배구조 개선과 대학운영의 민주성에 중심을 둔 균형 있는 진단지표 설계가 핵심적 처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부실 진단 결과에 근거해 최근 한 경제신문은 ‘급증하는 부실 대학, 퇴로 열어주는 구조조정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사설로 여론을 호도한다. 교육부가 지정한 이른바 ‘부실 대학’을 고령자센터나 테크노파크 등으로 재활용하고 나아가 부실 대학을 만든 당사자인 재단이나 설립자 후손에게 경제적 보상으로 폐교를 유도하란다. 경악스럽다. 이러다간 부실 대학이 아니라 부실 대한민국의 퇴로를 걱정할 날이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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