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행정조직의 구성원은 공문서를 통해 기록하고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이 공문서는 잘 쓰면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은 공문서의 기본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공문서의 원조는 역시 정부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정부의 공문서는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을 따른다. 이 규정에는 공문서의 정의에서부터 형식과 활용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다. 정부기관과 공문서로 직접 연결돼있는 대학은 정부의 공문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정부의 관련 규정을 한번쯤은 정독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후에 그 형식과 활용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되돌아보고 각자의 행정조직에 어울리는 대안을 찾아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몇 가지 공문서 사례를 중심으로 필자의 관점을 먼저 공유하고자 한다.

공문서는 내부기안문서와 발신문서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발신문서의 형식을 보면, 결문에 ‘기안자·검토자·협조자·결재권자의 직위나 직급 및 서명’이 표기돼있다. 이는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제4조 5항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결문에 이러한 정보가 노출되면 발신기관의 공식적 의견보다는 그 문서의 기안자 또는 결재자 개인의 의견으로 비쳐질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그 개인들이 로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기안자를 명시하는 것은 정책 실명제라는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결문의 노출 여부는 문서의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돼야 한다. 또 하나, 발신문서는 상대 기관에 보내는 서신과 같아서 기관 간에 공문서 에티켓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 조직의 내부기관 간에 내용에 이의가 있다고 공문서 접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수신문서에는 답신문서로 정중히 회신을 하는 것이 에티켓을 지키는 방법이다.

내부기안문서는 주로 의사결정을 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한다. 이 경우 실무담당자가 기안을 하고 중간관리자를 거쳐 의사결정자가 승인을 한다. 이 절차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관리자는 결재만 기다리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관리자가 공문서를 직접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경험과 판단력으로 비교하면 실무담당자보다 관리자가 기안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위계적 관료조직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일 수 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공문서 절차는 위계적 관료조직과 잘 결합된 의사결정 방식이다. 모두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이 절차는 다수결 원칙이 아니라 만장일치 의사결정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결재 과정 중에 창의적 생각은 깎이고 평범한 생각만이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최종 결재까지 이르지 못하는 문서는 조직의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창의적 생각이 더 보태질 수 있는 결재 방식, 그리고 채택되지 못한 공문서도 조직의 창고에 소중히 보관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 안에 혁신의 열쇠가 담겨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논문이 행정조직의 공문서와 같은 소통 도구가 된다. 논문을 통해 지식에 지식을 보탠다. 반면 공문서의 생산과 소통 구조는 논문의 수평적이고 열린 구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만약 논문을 공문서의 형식과 절차에 가두어 버린다면 학문의 세계는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료체계에서 가져온 공문서는 애초부터 대학에 어울리지 않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공문서가 논문의 장점을 벤치마킹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직 소통의 도구를 바꾸면 구성원의 생각이 열리고 조직의 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 대학 행정조직의 공문서가 이대로 좋은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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