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본지 논설위원 / 서경대 철학과 교수)

지난 6월 말 국회에서 열린 인문학진흥 토론회에 다녀왔다. 객석에서 보니 인문한국(HK)사업, 대학인문역량강화(CORE)사업 관계자들이 대형회의실을 가득 메우고 지원 지속을 거론하고 있었다. 돈 이야기였다. 가을철 예산국회를 앞둔 것이다.

HK사업은 꽤나 아픈 상처에서 착수된 사업이었다. 2005년께 인문학 강사 여럿이 자살한다. 비정규직의 사정을 누구나 짐작한다. 필자도 알고 지내던 시간강사의 죽음을 영안실에서 마주했다. 이를 둘러싼 사회적 외침에 사업이 시작됐다. 이 사업은 인문학 박사의 취업을 도모했다.

그런데 실상은 아니었다. 매년 연구소에 15억 이상이 지원되는데 3~4명의 HK교수 임용 정도가 핵심 조건이었다. 임용도 지원 초기보다는 중기에 주로 이뤄졌다. 저 돈이면 5000만원 연봉의 교수를 국가나 대학 주도로 20여 명 임용해 대학에 배치할 수 있을 텐데도 사업은 저렇게 진행됐다. 사업의 끝이 다가오자 논문 등의 실적을 거론하며 사업 지속이 요구된다. 이 사업은 정규직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을까?

사실상 실패한 사업이다. 몇몇 사업단이 연구 성과로는 두드러져 보이지만 인문학 강사의 전임교수급 지원을 추진한 국가사업 취지로 보면 낙제점에 해당한다. 요인은 당시 도입된 비정년트랙 전임교수제에도 있었다. 대학은, 특히 사립대학은 이를 활용해 낮은 연봉의 전임교수를 강의전담교수, 겸임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 등으로 남발한다. 정규직 교수제가 이완된 상황에서, 예산을 투입해 전임교수급을 지탱하려던 취지는 함께 무너진다. 대학에는 HK교수보다는 비정년트랙 교수가 훨씬 싸게 먹히고 매력적인 것이다.

인문학진흥에는 프로젝트나 사업보다는 정규직 교수제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이 무너진 채로 세금을 투입해봐야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HK사업은 말하자면 제도는 악화되는데 이 악화에 따른 위기를 세금으로 모면하려 한 것이다. 이에 국가도 억울하고 인문학도 불만스럽다. 불량한 제도는 예산을 소진시킨다.

HK사업이 대학원 진흥책인 반면에 CORE사업은 학부지원사업이었다. ‘College of humanities' Research and Education’에서 따온 멋진 명칭의 이 사업은 돌아보면 갑자기 알려졌다. 취업률이 정밀하게 측정되던 당시에 공학계 정규직 취업률이 인문계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 지표에도 제도는 이를 결과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고용 유연성은 기술직보다는 일반관리직에서 더 광범위하게 실천된다. 회사는 기술자를 비정규직으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에 인문계 졸업자 일자리가 보다 많이 비정규직화된다. 이러한 여건에서 ‘문송’이라는 유행어도 등장한다. 이에 당시 정부는 인문계 정원을 공학계로 넘기는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PRIME사업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 인문학진흥 토론회가 2015년 3월 열린다. 이어서 CORE사업이 발표된다. 이 사업은 인문계 학과 진흥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원 졸업자가 취업이 안 돼 진학자가 줄고 있는데, 이를 타개하려 인문계 학부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핵심 문제가 아니라 주변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PRIME사업에 따른 반대급부 성격의 CORE사업은 실현하려는 가치가 지엽적이다.

이렇게 인문학 지원사업은 지원을 받은 이들이 비정규직에 도달하는 결과에 처해있다. 교수제를 손봐야 할 정부는 별 움직임이 없다. 평가지표에 실질적 전임교원만을 반영한다는 정책으로도 상황은 뿌리부터 바뀔 것 같은데 그러한 움직임도 없다.

세계인이 한국어를, 한류를 주목하고 있다. 직업도, 흥미도 생기기에 그럴 것이다. 이에 대학 한국어교육기관에는 최근 외국인들이 더욱 늘었다. 그런데 대개 선생은 비정규직이다. 한국어 세계화를 비정규직이 견인하는 꼴이다. 대학 비정규직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서 좋은 일자리를 통한 사회발전을 대하고 싶다. 제도적 접근이 인문학 전임교수제에 이뤄져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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