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 방학을 맞아 아들 둘을 돌보다보니 이상하게 자꾸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파트로 처음 이사 갔던 날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이라든지, 겨울날 빙판에서 놀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졌던 일 등 소소하지만 아련한 기억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내 기억력의 한계는 거기까지. 더 많은 추억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음미하고 싶지만 낯선 기억을 떠올리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기억은 늘 제자리에서 맴돌 뿐,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빵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던 일은 비염 환자인 나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이들 모습이라도 많이 남겨놓자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으로 일상의 순간을 연신 촬영했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촬영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영화로 말이다. 이런 아이디어에 착안한 영화 ‘보이후드’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12년간 필름에 조금씩 담았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는 허구지만, 관객들은 주인공 소년을 포함한 출연 배우들의 성장과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 전개는 출연자들의 생물학적 변화와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감독은 ‘스쿨 오브 락’과 ‘비포 선 라이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는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와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여섯 살 아이다. 엄마와 별거 중인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다정하게 놀아주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며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가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자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원치 않는 이사를 다녀야 한다. 이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운 메이슨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늘 외롭다.

영화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하지만 링클레이터 감독은 그 특유의 재치로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주인공의 성장을 체험시켜 주는 것 같은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12년간 아이들의 성장을 담았기 때문에 교육적 의미를 담은 장면이 여럿 나온다. 필자는 특히 아이들의 성장뿐 아니라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엄마의 성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 초반 아이들의 엄마는 자신이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재개하기 위해 휴스턴으로 이사한다. 엄마는 바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학공부에 매진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 대학원까지 진학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가족들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식사자리로 찾아와 아이들의 엄마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있다. 이민자 출신인 이 사람은 배관공이었는데 몇 해 전 이 가족의 집을 수리하러 갔다가 아이들의 엄마에게 머리가 똑똑하니 공부를 계속해 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이후 공부를 계속하게 돼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지배인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참 지혜로운 분이라며 엄마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을 남기고 식사비를 대신 지불한다.

당시 엄마는 배관공에게 왜 그런 조언을 했을까? 그것은 교육을 통한 성장과 발전을 본인이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에는 몇 해 전부터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중년 여성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오래전 대학을 졸업했거나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경우다. 필자는 이들에게 다시 시작하는 학업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곤 한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저마다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의 학업 후 목표는 확실하고 뚜렷하다. 물론 중도탈락자도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대학교육정책은 점차 바뀌고 있다. 하지만 학령인구 및 대학진학률이 감소되고 있는 이 순간 대학 역량 진단평가와 같은 인위적 구조조정 말고 보다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에 따르면 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부른다고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습의 기회를 필요로 하는 중년 학습자들이 용기를 내어 대학문을 두드리는 ‘곡선’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점차 확산되기를 바란다. 위기의 대학에는 선택권이 없다. ‘관대함’으로 이들을 맞을 만반의 준비부터 갖춰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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