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실 본지 논설위원/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사전적 의미로 ‘평가’는 어떤 현상이나 대상의 가치 또는 질을 판단하는 과정이며, 교육목표분류학적으로는 인지적 영역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해당되는 고등정신능력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평가는 단어 자체에 함축돼 있듯이 ‘가치를 입히는 일’이며, 목표 지향적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대학입학자원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교육의 질 담보를 지향하도록 설계된 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권역별평가 도입 등 그 방식과 명칭을 수정 보완한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가 발표되면서 몇몇 대학 총장이 사퇴하는 등 일부 대학가가 뒤숭숭하다고 한다.

최근 10여 년간 저출산 고령화는 거의 모든 공공정책 구안의 핵심 배경변인인 데다 2016년 기준 합계출산율 1.17명으로 OECD 최하위이자, 통계청 발표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 0.97명인 초저출산국의 대학으로서는 자율개선대학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대학이 각각의 비전과 사명을 점검하고, 대학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외부와 소통해야 할 핵심가치를 추출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제도를 획기적으로 재구조화해 궁극적으로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고 지원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 익숙한 과거나 현재와 전혀 다른 교육 및 산업생태계에서 상황주도력을 확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의 평가에서는 절대영점을 보유한 비율척도는 불가능할 뿐아니라, 간접측정의 결과를 바탕으로 가치를 판단해야 하므로 타당도와 신뢰도 확보에 만전을 기해도 여러 단계에 걸쳐 오차발생 여지가 있게 마련이다. 또 원래 절대선이 존재하지 않기에 관점과 입장에 따른 불만의 소지도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든 관용영역내(zone of tolerance)에 존재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이번 발표결과 가장 구체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대학거버넌스 정점의 부정비리가 감점요인이 돼 대학이 부정적 평가를 받음으로서 대학내부가 그들의 비리에 침묵하도록 강요하는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일부 일리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대학을 바라보는 학부모를 포함한 교육수요자와 외부공동체의 상황인식은 매우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대학평가 반영여부와 관계없이 극소수 문제제기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무임승차자가 돼 대학 내 부조리가 지속적으로 방조돼 왔다는 것이다. 수년간 소송에 휘말려 내부구성원 모두가 문제를 인식한 후에도 대학에서 문제제기자만 문제야기자로 낙인될 뿐 학생과 대학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노력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은 3분의 2 이상이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됐고, 정원감축도 5만명에서 2만명으로 낮춘데다 결과발표이후 예상 감축인원은 1만명 정도로 대폭 축소될뿐더러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하는 대학에는 지원금도 준다니 우는 애 떡 하나 더 준 ‘비둘기파’ 방식으로 마무리됐다는 세평이 적지 않다. 사실 이번 대학 기본역량 진단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기본의 기본을 점검한 수준이다. 자율개선대학이라고 자신 있게 교육인프라와 교육의 질을 내세울 대학은 많지 않다.

자율과 시장이 살아있어 고등교육경쟁력이 높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에서는 자율협의체의 ‘기관평가인증’을 통해 공신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이 이름에 걸맞은 질을 담보하려면 평가부담을 토로하기 전에 지속적으로 자체평가의 타당도와 효능성을 제고해 타율의 여지가 줄어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기술혁신에 따른 사회 전반 구석구석에서 패러다임 전환의 파고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기본의 기본을 통과했다고 안도할 여유는 없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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