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 광주보건대학교 교수

▲ 김미 교수

“도대체 저 까치집은 어떻게 이번 태풍을 견뎠을까.” 커다란 느티나무 꼭대기에 매달려있는 새집을 보고 어느 분이 혼잣말처럼 불쑥 내뱉는다. 생각해보니 수년간 저 나무위의 둥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제법 센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걸 보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더 궁금해진다. 태풍 앞에선 큰 나무도 맥없이 부러지고 뽑히는 게 다반사다. 특히나 유난스런 무더위와 태풍, 난데없는 호우로 정신없었던 금년 여름을 저렇게 버텨낸다는 것이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몇 년 전 TV에서 본 자연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까치 두 마리가 둥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것으로 기억한다. 새들은 나뭇가지는 물론 철사조각, 진흙 등 온갖 자재를 총동원해서 배수와 통풍이 잘되는 가장 효율적인 집을 만들어낸다. 과거에 비유하면 초가집 짓기, 현대에 비유하면 트라스공법이라고 설명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기능적으로 우수한 집짓기의 원리만을 설명해줄 수 있을 뿐 튼튼한 집의 비밀을 찾긴 어렵다.

태풍도 견디는 튼튼한 집의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수많은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한 담금질이 그것이다. 새들은 집을 지을 때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바람 없는 잔잔한 날을 골라 할 만도 한데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계속 집짓기를 시도한다. 특히 바람이 강하면 나뭇가지를 엮는 작업이 어려울뿐더러 간신히 성공한 기본 틀조차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또 계속한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면서 기어코 한 달여 만에 어떤 기상 악조건도 이겨낼 수 있는 집을 완성해낸다.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집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분명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 텐데 강풍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그들에게 꼭 맞는 보금자리를 만들어내는 새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감탄스럽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다. 언제 어떻게 짓느냐는 각자 선택의 문제이지만 처음 집을 지을 때 튼튼한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새들은 굳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집짓기를 해서 결국 아름답고 튼튼한 둥지를 만든다. 마치 오늘의 악조건을 이겨내야만 내일의 맑은 날을 만난다는 것을 작은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문득 나 자신이 새들만도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 때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누군가를 탓하고 피하려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 그때야말로 내 인생의 집을 더욱 단단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경우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순간을 외면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면으로 부딪혀 봤다면 어쩌면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 돼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새들이 바람에 반쯤 날아간 망가진 둥지를 보면서도 또 나뭇가지를 모으는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일개 미물이라는 새들은 이런 것들을 다 본능으로만 해낸다. 좌절하는 법이 없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은 본능뿐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이성, 열정 등 신이 주신 온갖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생에서 기본적인 튼튼한 기초 하나 다지지 못해 사소한 시련에도 좌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번 태풍은 유난히 센 바람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새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게 남아있다. 새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동시에 부끄러움도 함께 배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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