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행정⑬] 행정의 마음
[대학행정⑬] 행정의 마음
  • 한국대학신문
  • 승인 2018.09.16 2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블라인드 설치 일을 하는 A가 필자의 집에 방문했다. A는 상담하고 설치하는 동안 줄곧 밝은 표정으로 즐기면서 일을 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필자는 A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의 직업에 만족하나요?” A는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블라인드를 설치해주면 다들 좋아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 직업에 굉장히 만족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필자는 주변의 지인들이 블라인드를 설치한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A를 소개했다. 그러면 며칠 후에 필자는 양쪽 모두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어김없이 듣는다. A는 돈을 받은 대가로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노동에만 집중해도 된다. 이것은 필자와 일정한 조건으로 연결된 의무적 관계다.

여기에 A는 장점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서비스 ‘대상’을 인식하고, 그 대상과 좋은 ‘마음’으로 연결하는 관계 능력이다. 이것은 A가 스스로 연결한 자율적 관계다. 시장경제 관점에서 보면 이 자율적 관계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도 아니고 누군가 요구할 의무도 없다. 다만 A가 타율적 조건 관계로만 머문다면 자신의 노동을 통해 더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필자로부터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앎의 나무》에서 바렐라는 “어떤 체계를 컴퓨터처럼 타율적 체계·통제된 체계로 볼 때 체계와 상호작용하는 우리의 근본 범주는 ‘명령’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잘못’이다. 반면에 자율적 체계로 볼 때 근본 범주는 ‘대화’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이해의 단절’이다”라고 직시했다. 명령으로 연결된 조직체계는 단위조직별로 해야 할 일이 잘 분업화돼 있고, 이들 간에 연결돼있는 조직도를 잘 따라가면 협업과 소통도 잘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해결해야 할 대상을 앞에 두고 단위조직 간에 서로 엉뚱한 논쟁으로 번지기 일쑤이고 결국 본질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명령으로 연결된 조직체계가 지닌 한계다. 이러한 타율적 관계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꿈꾸고 연결해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조직에 새로운 연결 관계가 하나 더 필요하다. 그것은 서로가 마음으로 연결되는 관계다. 마음으로 연결된 조직은 문서로 정의할 수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자율적 체계다. 대학은 어느 조직보다도 이러한 마음으로 연결된 조직체계여야 한다. 하지만 책 《대학의 영혼》에서는 ‘영혼을 잃어버린 건 학생들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대학이다’라고 하면서 교육과 연구의 객관주의와 분과학문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대상을 알아갈 것을 제안한다.

행정은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조직적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행정이 그 목적에 대해 애정 어린 호기심을 차단한 채 오로지 명령 관계로만 움직인다면 대학 조직은 법원의 재판장처럼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행정인 스스로도 조직에서 정체성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육과 연구가 타율적 체계, 통제된 체계 속에 갇히게 된다. 행정은 대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애정을 간직하고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갇힌 틀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전체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궁극적으로는 창의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마음을 열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마음을 닫고 무관심해져서는 안 된다. 스테판 에셀은 92세의 나이에도 무관심과 무사유는 최대의 적이라고 하면서 《분노하라》는 책을 썼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 그리고 필요하면 분노할 줄 아는 용기가 조직 생명체를 건강하게 한다.

<한국대학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