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 경일대 교수, 사교련 자문위원)

▲ 박규홍 교수

매일의 저녁뉴스가 우리 사회 문제점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쏟아지는 어두운 뉴스를 둘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이라 하는 이들의 부당한 짓과 서민들의 아우성. 하지만 다른 듯한 둘은 같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민주시민과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실패한, 개인의 욕심과 이기심을 부추겨온 ‘교육’이 그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의 눈길을 끌어, 그가 쓴 《고려도경》에도 담긴 고려인들의 뜨거운 교육열이 지금은 천문학적 사교육비로 인한 말단비대증으로 변해 한국 사회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남다른 교육열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사회문제가 돼버린 전도현상의 바탕에는 비틀대는 교육정책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 정부에 걸었던 교육혁신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 그러나 지난 1년여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이번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교체를 계기로 정부는 교육이 교육의 논리로 존립하는 교육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교육문제는 후순위요 다른 정책과는 별개라는 이제까지의 소극적 편견을 고수하려 한다면, 어떤 정책도 성공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대학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이후의 어떤 치적도 무망할 뿐 아니라 설사 다소의 업적을 이룬다 하더라도 성공한 정책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고등교육정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어떤 면에서는 현 정부의 승패가 고등교육정책 여하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정책에 공을 들인 현 정부의 지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이 IMF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통계로도 잘 읽히지 않는 실업률의 질적 측면이다.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빅데이터를 활용할 알고리즘과 코딩을 의논하며 협동심과 창의력을 키우는 젊은이와 주입식으로 일관한 공부로 대학을 마치고 혼자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젊은이가 똑같이 무직자로 기록되더라도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다르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이자 경제의 문제이고, 사회문제이자 곧 국가 미래의 문제다. 그러기에 확고한 교육철학을 기초로 한 고등교육정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세계에 밀어닥치고 있는 기술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4D 프린팅, 5G 등 어느 것 하나 파급력이 약한 것이 없다. 그 중심에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섰던 자리를 하나둘 대신하며 인간 존재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답변이 만만찮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IBM이 개발한 왓슨(Watson)은 최고 명의들의 데이터를 축적한 의사의 권위로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유명한 글로벌 IT기업들이 집 안의 작은 공간을 차지할 AI 스피커 시장 다툼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가볍게 들리지가 않는다. 21세기 막강한 영향력의 플랫폼을 구축한 외국의 기술과 자본에 우리의 경제주권이 휘둘릴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앞선 국가들의 고등교육 시스템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시대에 맞는 우리 고등교육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19세기 후반 약육강식의 절박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과거시험 준비 외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던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닥친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됐지만, 그들의 피로 얻은 역사의 교훈은 그대로 현실이다.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길을 터줘야 한다. 대학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고등교육정책이 나와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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