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후순위채권과 전문대학
[수요논단]후순위채권과 전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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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 조훈 교수

1997년 IMF 이후 한창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1998년 6월 어느 날 국민은행 합병 인수팀이 대구에 있는 대동은행 본점에 새벽같이 들이닥친다. 피합병은행인 대동은행 직원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그저 합병은행의 지침대로 따라할 뿐이었다.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대마불사’의 신화 붕괴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정확히 20년 전 은행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한 산업의 구조조정이 합병은행이든 피합병은행이든 임직원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제 1년 후 2020학년도가 되면 대학 학령인구의 인구절벽이 시작되는 첫해가 된다. 정부의 선제적 조치로 제1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와 제2기 대학 기본역량 평가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2020년도 이후 대학의 운명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외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뿐만 아니라 대학입학률의 감소는 시장이 대학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전문대학의 운명은 마치 후순위 채권과 같아 보인다. 후순위채권이란 기업이 파산했을 경우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부채가 청산된 다음에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대학 산업의 구조조정에 있어서 의사결정의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8월 17일 발표한 ‘2022대입전형’ 결과를 보면 전문대학은 가장 첨예한 이슈였던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의 비율에서 원격대학·산업대학과 함께 ‘예외’로 규정돼 발표됐다. 전문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한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령인구 감소와 미래사회를 대비한 대입제도개선과 같은 논의에서 전문대학 입장은 후순위로 고려된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공론화 의제와 재정지원에 있어서 전문대학은 정부의 설계에서부터 후순위에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에게도 그렇게 비춰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OECD교육지표 2018’에도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25~64세)의 교육단계별 상대적 임금(고졸자=100 기준)은 전문대 졸업자 116, 대학 졸업자 149, 대학원 졸업자 198로 발표됐다. 전문대 졸업자는 OECD 국가의 평균인 123에 비해 7이 낮은 반면 대학 졸업자는 OECD 평균인 144보다 5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2015년도와 비교했을 때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문대학 졸업생들의 임금격차는 인식의 격차가 보상의 격차를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최근 열린 전문대학 입시 수시박람회에서 전문대학의 상담창구를 찾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전문대학 입시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제공을 고등학교 상담현장에서부터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시상담 교사의 인식의 후순위를 바꿨야 할 필요를 소비자인 학부모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은 시장 논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로 들어갈 운명이다. 그러나 전문대학은 안팎으로 준비된 것이 너무 부족하다. 최근 오세정 의원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대학신문 공동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학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논의된 자료에서도 전문대학 법인 재정자립도는 4년제 일반대학에 비해 아주 열악함을 알 수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가 발제한 ‘학교법인 법정부담금제도의 문제와 개선방향’이라는 논고에서 살펴보면 전문대학 사학법인의 법정부담금 전입실적이 2016년 말 기준으로 18.9%에 불과하다. 이는 4년제 일반대학의 법정부담금 전입률 48.5%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초·중등 학교법인의 법정부담금 부담률이 18.5%임을 감안할 때 전문대학 법인의 재정자립도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기는 예견되나 기회는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전문대학에 대한 인식의 후순위를 바꾸고 전문대학 자체의 자구노력이 함께 선행돼야 한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어미닭의 관심과 병아리의 노력이 함께하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필요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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