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

“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최상위, 하지만 R&D 효율성은 최하위”.

예산철마다 R&D 예산심의에 따라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다. 2000년 2%에 불과하던 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R&D 투자금액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2014년 이래로 4% 이상의 높은 비율을 유지하게 됐고, 그로 인해 GDP 대비 R&D 투자비율 전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다보니 투자는 많이 이뤄졌는데 왜 그에 따른 결과물은 나타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왔다. 이와 함께 2015년까지 매년 5% 이상 큰 폭으로 예산이 증가해온 정부 R&D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이뤄졌다. 큰 폭으로 증가해온 R&D 예산에 비해 R&D 투자 효율성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그로 인한 효과만은 아니겠으나, 최근 3년간 정부 R&D 예산의 증가율은 2% 미만에 그쳤으며, 직접적인 정부 예산 투입 외에 세액 감면 등을 통한 조세지출 또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R&D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효율성이 나빠 결과물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투자액이 아닌 투자누적액을 가지고 살펴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2000년 이후 R&D에 대해 급속도로 많은 투자를 확대해온 우리나라이지만 누적된 R&D 투자액은 타 선진국들과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1981~2013년까지의 R&D 투자누적액 비교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1이라고 했을 때, R&D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15.4, 일본은 7.4, 독일은 3.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 누적 투자액이므로 이를 현재 화폐가치로 변환하면 그 차이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R&D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던 1980년대 이전까지의 투자액을 포함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더 현격해질 것이다. 1980년대 이전 R&D 투자내용은 중요치 않다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현대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정보통신기술의 원천기술은 대다수가 1980년대 이전의 R&D 투자에 의해 이뤄졌던 것을 감안한다면 쉽사리 무시하지 못할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또 과거에는 10을 투자해 1이라는 혁신을 얻을 수 있었다면 현재는 100을 투자해도 혁신 1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으로 한계생산량이 극에 달해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화돼왔다. 

뉴턴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처럼 현대 과학기술의 모든 발견은 축적의 산물 위에서 하나를 더 얻음으로써 이뤄졌다. 즉 R&D를 통한 혁신은 대표적인 축적의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충분한 축적은 이루지도 못한 채, 최근 10여년 간 열심히 투자했는데 왜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며, R&D 투자를 1970~1980년대 산업화적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사회적 인식때문에 우리나라의 R&D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R&D 축적의 영향은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라 불리던 산업들의 R&D 축적량을 살펴보면, 축적량이 적은 순서대로 최근 경쟁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산업 또한 경쟁국에 의해 추월 당하기 직전에 있다. 경쟁국인 중국의 R&D에 대한 투자와 그 축적 속도가 가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무협지를 보면 내공 없이 현란한 초식만을 익혔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중원무림에 등장하자마자 객사하곤 한다. 우리의 R&D가 내공을 쌓는 축적이 아니라 현란한 초식을 쌓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정글 같은 글로벌 R&D 경쟁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금번 예산 심의에서는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욱더 R&D 내공을 축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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