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행정⑭] 교육실명 성적증명서
[대학행정⑭] 교육실명 성적증명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K대의 성적증명서는 조금 특별한 점이 한 가지 있다. 학생이 이수한 교과목 옆에 담당교수 실명이 함께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학생이 홍길동 교수의 경제원론을 수강했다고 하면 그 학생의 성적증명서에는 ‘경제원론(홍길동)’이라고 표기된다. 이른바 ‘교육실명제’라 할 수 있는데 K대가 이렇게 변경해 적용한 것은 2007년부터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담당교수명이 기재된 성적증명서는 무리 없이 잘 발급되고 있다. 필자는 당시 이 교육실명제 추진 사례를 개인적으로 대학행정에서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육실명제가 언젠가는 대학의 교육에 좋은 영향을 주는 부드러운 개입, 즉 넛지(Nudge)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변화를 느낄 수 없다. 어느 한 대학교의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성적증명서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획기적으로 폭발하는 순간, 즉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같은 평가자는 ‘어느 대학의 누구 교수로부터 무슨 교과목을 수강했지?’라고 성적증명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고, 평가기관에서도 교수나 대학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려 할 것이다. 평가자의 관점이 바뀌면 학생은 그저 학점을 잘 주는 교수가 아니라 그 교과목의 권위 있는 교수를 찾아 수강하려고 할 것이다. 만일 그 교수가 다른 대학교에 있다면 학생은 그 대학까지 찾아가 수강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캠퍼스를 넘나드는 학생들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은 대학이 문호를 개방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교수는 열정적으로 찾아주는 학생들로 인해 자신의 교과목에 대한 책임의식과 명예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변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대학 출신, 몇 학점짜리 학생인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활 과정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하면 입시과열 문제를 완화시킬 것이고, 나아가 대학 서열화 문제도 치유될 수 있다. 작은 변화를 가지고 너무 큰 비약을 했을까? 하지만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블링크》에서 말콤 글레드웰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에 임할 때, 우리는 거창한 주제에는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흘러가는 순간순간의 상세한 내막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이 작은 변화들을 두루 모아 엮으면 마침내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필자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교육실명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변화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다른 작은 변화를 위해 대학교의 기록 증명 전반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부터 벤치마킹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학생부에는 한 학생에 대해 20여 쪽 넘게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거기에는 인적사항, 학적, 출결, 수상경력, 자격증, 진로희망사항, 체험활동, 교과학습(성적),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독서활동,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없는 것도 있다. 전체 과목에 대한 평균이나 석차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대학입시에서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 결과 대학의 입학전형은 학생의 다양한 장점을 발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대학의 증명서에는 학생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반면 한 줄 세우기를 위한 정보는 남아있다. 대학생은 성적증명서 한 장으로 계량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대학생활 동안 학점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도 노력하지만 교육과정 이외에도 캠퍼스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 나간다. 대학은 그러한 대학생의 온전한 모습을 기록하고 증명해줄 의무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