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通] 대학캠퍼스의 의미를 묻는다
[대학通] 대학캠퍼스의 의미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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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섭 안동대 대외협력과장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캠퍼스가 참 아름답다. 메타세쿼이아가 고색으로 물들어가고, 어학원가는 길목의 은행나무도 찬란한 가을의 자기 색을 뽐내려 한다. 계절의 풍요로 넘실대는 캠퍼스의 자연과는 달리 캠퍼스의 주인공인 청춘들이 만들어내는 활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지역대학은 캠퍼스 여건이 좋다. 친환경적일뿐더러 너른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캠퍼스를 외곽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지를 확보하며 아름다운 캠퍼스를 조성했다. 많은 건물에 각종 시설을 구비한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 규모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좋은 캠퍼스가 썰렁하기 그지없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유령화되고 있다. 방학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학기 중에도 청춘이 넘실대고 약동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취업전선에 내몰린 학생들이 시험공부 준비로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어 그렇다 손 치더라도 과연 이런 모습이 대학캠퍼스의 본래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학은 그 자체로 도시다. 다양한 학과, 그에 걸맞은 부속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미래의 사회인들이 함께하는 ‘작은 사회’다. 캠퍼스에서 민주적 시민의 소양과 다양한 공동체 경험을 나름대로 축적해 나가면서 자유와 지성의 광장을 형성하는 곳이 대학이다. 언제부터인지 대학 본연의 그러한 모습이 쇠퇴하고 있다. 취업 강좌는 넘치지만 교양시민으로 성장을 도모할 다양한 활동이나 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위축돼있다. 학교 당국의 제공도 한계가 있고 학생들의 참여도 시들하다. 그러다보니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일단 교문을 나서기 바쁘다. 캠퍼스에 머물 매력이나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캠퍼스 주변의 대학촌도 사정은 비슷하다. 식당과 편의점으로만 둘러싸이고 있다. 그렇다고 시내로 나간다고 해도 청춘을 반길 장소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호프집이나 듬성듬성 자리한 카페가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다.

지역도시에서 학창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 갈 곳이 없다는 푸념이 푸념만은 아니다. 이는 지역도시로서 심각한 위기 징후다. 지방대학 캠퍼스가 학생들의 생활공간으로 매력을 잃어가는 판에 지역도시마저 이들을 품을 공간이나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역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젊은층을 붙들지 못하면 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역의 회복력 확보 차원에서 이 문제는 빠르게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교수 없는 강의실이 교육혁신의 거대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미네르바 스쿨은 전 세계에서 누구나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캠퍼스 없는 대학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것 또한 목전에 닥친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큰 자산으로 여기던 도서관과 강의실이 짐이 될 수도 있다. 지역대학과 지역사회가 손을 잡고 미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는 더욱 명료하다.

지역에서 대학의 위치는 공동체 유지의 중요한 자산이다. 대학이 쇠락해가는 지방의 버팀목과 비전창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캠퍼스는 지역과 공유하는 개방적 전략으로 캠퍼스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대학캠퍼스가 메꾸어주지 못하는 청춘들의 열망을 지역사회가 품어줄 필요가 있다. 안동시만 해도 대학이 3개나 있지만 학생들이 시내에서 놀고 머물 곳이 없다. 지역이 청춘들이 머무를 수 있는 다양한 색채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낮은 자세로 서로를 품어야한다. 공동체의 훈기를 안고 상생해야 한다. 지역에서 학생들이 즐겁게 학창생활을 보낼 수 있는 터전 마련을 위한 발상의 전환을 서두르자.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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