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선 서강대 겸임교수

이경선 서강대 겸임교수
이경선 서강대 겸임교수

한 사람의 인생에는 차별화된 지식과 재능, 경험, 숙련된 업무 노하우, 개인이 겪은 역사적 사건, 특별한 스토리 등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다양한 무형의 자산과 콘텐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는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개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더욱 단련하고 고도화해 특별한 사회적 자산이나 작품으로 승화시킨 분들이 있다. 대학교와 대학원 등 정규 고등교육 과정을 통해 숙성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독학으로, 자구적 노력만으로 사물·사건·현상 등에 대해 몰입해 연구하면서 나름의 전문가적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을 자립적으로 충분히 구축한 분들이나, 어느 정도 전문적 잠재력을 가진 분들에게 더욱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현행 학술진흥법을 비롯한 여타의 학술 관련 개별법에는 대중 속에 묻혀있는 자생적 연구자들의 역량을 발현시킬 제도적 토대가 전혀 마련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위 소지자나 대학 교수, 국책기관 연구자만이 연구자로 인정받고 연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구조화돼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어도, 일단 학위나 대학 교원이 아니면 연구자로 참여할 기회가 협소하다. 이는 비단 한국연구재단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 각종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연구용역과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R&D 예산을 책정하고 각계의 전달체계를 통해 집행하더라도 자생적 연구자나 일반 재능인들의 연구 참여 기회와 연구 주도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꽉 막힌 연구 생태계로 국가적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이는 등 파격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사회를 먹여살릴 성장동력이 다양하게 발굴되지 못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학위도 전문자격증도 모두 한 사람의 내적 역량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학위나 전문자격증, 교수로 임용됐는지가 아닐지라도, 가치 있는 창작을 많이 했다거나, 전문서 저술을 했다거나, 계량화와 질적 평가가 가능한 어떤 가시적인 실무성과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거나 하는 등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역량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학위 하나가, 자격증 하나가, 사회적 지위 하나가 평생 동안 독점적 계급이나 신분으로 굳어지는 것은 불합리하다. 

어딘가에 있을 자생적 연구자들에게 개방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술 활동을 권하고 지원할 수 있는 민간학술저술활동지원 법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수 엘리트 지식인 중심의 지식생산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수 대중 누구든지, 언제든지 뜻이 있고 역량만 있다면 공적 채널을 통해 연구하고 논문도 쓰고 학회 활동도 할 수 있는 개방형 지식생산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때 세상을 변화시킬 선구자와 혁신가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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