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생산적인 국정감사를 기대한다
[발행인 칼럼]생산적인 국정감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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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섭 발행인

올해도 어김없이 국정감사(이하 국감) 시즌이 돌아왔다. 국감은 ‘국회의 꽃’으로 불린다. 국감을 통해 스타의원이 탄생하고, 베일에 가려졌던 사건들의 내막이 파헤쳐진다. 국감장은 의원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체험하는 장이기도 하고 정책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민낯이 낱낱이 들춰지는 난장이기도 하다.

국감의 수감기관은 소관 상임위가 관장하는 행정부서와 법률로 정한 소속기관들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주로 수감기관의 기관장을 상대로 국감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관장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수감기관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국감을 준비한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비명이 행정 각 부처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회와 수감기관이 일합을 겨루는 국감과정은 창과 방패의 대결장이다. 파헤치려는 감사자와 막으려는 수감기관간에 숨 막히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국감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하며 세간의 관심을 불러모은다. 그러나 역대 국감에 대한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국감 종료 후 도하 신문에는‘부실국감’ ‘갑질국감’ ‘호통국감’ ‘수박 겉 핥기식 국감’등 부정적 용어가 가득 찬다. 제도 존속의 의미조차 의심받을 만하다. 이런 일은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반복됐다. 아예 이골이 났는지 구태의연한 국감의 릴레이는 국회 대수와는 상관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래 국감은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 요소가 교묘히 결합돼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유의 제도다. 국감은 1689년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후 영국에서는 의회 내에 임시수사센터를 설치해 필요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미국에서는 1921년 의회 내에 감사원을 설치해여 상시적으로 필요한 사안에 대해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체제로 발전했다. 이른바 청문회 제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감은 미국식도 영국식도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국감을 실시하는 국가는 찾을 수 없다. 이로 인해 비슷한 기능을 가진 국정조사권이 있으므로 효과 없는 국감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감은 엄연히 헌법에 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 제도로서 가볍게 존폐를 논의할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국감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특정기간을 정해 국감을 실시하는 제도를 상시 운영 체제로 바꿔야 한다. 2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국감을 수행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턱없이 많은 수감기관의 숫자도 줄여야 한다. 산하기관에 대한 국감은 소관부처의 감사기능을 활성화해 대체하고 행정 각 부처의 소관업무에 대한 보다 철저한 감사를 가능케 해야 한다. 수감자료의 과도한 요구와 불러다놓고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는 증인출석 문제도 손봐야 할 것이다.

국감 파행의 원인은 의원들의 의원답지 못한 행태에서도 찾아진다. 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은 고도의 자율성을 갖고 판단과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감에 임하는 의원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자율성이 우리 국감현장에서 실종된 경우를 많이 본다. 여당은 정부의 보호자로, 야당은 공격수로 나뉜 국감에서 무슨 성과를 바라겠는가?

여당의원이라 할지라도 국감장에서는 매서운 독수리가 돼 행정부의 잘못된 점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소신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여야의 지리한 정쟁장으로서의 국감은 더 이상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금번 국감에서는 드라마 ‘어셈블리’에 나오는 스타 국회의원 진상필 의원의 화신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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