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서울연구원 산업공학박사

최근 부실학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학회의 형식은 갖추고 있어 ‘가짜’학회가 아닌 ‘부실’학회라고 명명했다) 참석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부실학회 참석 자체가 규정 위반은 아닐지 몰라도, 연구자로서 당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연구자로서 당당하지 못한 연구행위가 부실학회 참석뿐일까? 부실 논문, 부실 연구보고서, 부실 출장, 부실 회의, 연구장비 부실 사용 등 각종 부실 연구행위는 없을까?

연구비카드시스템이 구축되고 연구자의 의식 수준도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선진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연구자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세부규정은 많고, 연구하는 척하기만 하는 부실 연구자 또한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정부는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고 연구자는 충실히 연구를 수행하는 그런 선진 연구시스템으로 변할 순 없을까?

우선 시급히 보완해야 하는 것은 부족한 연구행정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연구자가 직접 세부규정을 확인하거나 직접 행정 처리하지 않고 연구행정 전문가가 대신해 준다면, 연구자는 연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학의 산학협력단은 일반 행정직원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으므로 대학에서 연구행정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그게 여의치 않다면 정부가 연구행정 전문가를 대학 산학협력단에 파견하는 등의 구조적 개선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수년 동안 그래왔듯이 규제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보다 촘촘한 세부규정으로, 연구자를 귀찮게 해서라도 부실 연구행위를 예방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물가에 말을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듯이, 각종 규정은 부정행위를 막을 수는 있어도 긍정행위를 독려할 수는 없다. 실례로 부실학회를 못 가게 하는 규정은 만들 수 있지만, 정상 학회에서의 부실행위(증빙 서류만 갖추고 학회장을 떠나는 행위 등)를 부작용 없이 막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부실 연구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과도한 세부규정은 정상 연구자의 연구 의욕을 떨어뜨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연구비 사용내역 공개와 연구 자율성 확대라는 빅딜을 제안하고 싶다. 연구자가 행정적으로 불편해하는 세부규정을 완화해 연구의 자율성을 확대해주는 대신, 연구자의 행정 업무가 늘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구비 사용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의 요구로 국회의 입법·정책개발비 증빙자료가 공개됐듯이, 세금으로 수행된 연구의 연구비 증빙자료도 국민이 요구할 경우 공개할 것이다. 어차피 국민이 요구하면 공개해야 하는 자료인 만큼, 스스로 내역이라도 공개하자는 제안이다. 이런 빅딜이 성사된다면 대다수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성이 높아질 것이고, 부실 연구자들은 시민단체나 네티즌 수사대가 신경 쓰여서라도 부실연구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증빙을 필요로 하지 않는 특수활동비가 국가적으로 최소화되고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도 업무추진비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사회적 흐름에, 세금을 사용하는 연구자들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 세금 집행에 대한 국민적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국민이 낸 세금을 사용하는 연구자들도 보다 엄격한 연구비 집행이 요구된다. 부실 학위논문 파문으로 학위논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됐듯이, 이번 일을 계기로 연구자는 세금 사용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가지고 정부는 연구 자율성을 확대해주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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