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간소화?…대입 생태계 뒤흔드는 '거꾸로 내실화'
'개선 아닌 개악', 대학가 불만 '팽배'
'학종 안티' 언제까지…대학가 무력감 해소, 언로 확보 '선결과제'

대입 선발 주체인 대학은 대입개편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대입의 한 축을 배제하고 여론에 휘둘린 개편의 결과물 역시 좋을 리 없다.(사진=한국대학신문B)
대입 선발 주체인 대학은 대입개편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대입의 한 축을 배제하고 여론에 휘둘린 개편의 결과물 역시 좋을 리 없다.(사진=한국대학신문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이하은 기자] 대입 선발 주체는 대학이다. 대학들은 저마다의 인재상을 기반으로 일정한 전형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일컬어 대입선발 자율권이라 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자율과 거리가 멀다. 대학들은 교육부가 주축이 돼 내놓은 대입정책을 따르기 급급하다. 교육부는 정부재정지원사업을 대입정책과 연계해 휘두르며 대입 생태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올해 8월 발표된 2022학년 대입개편안은 한 데 내몰린 대학들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선발 주체인 대학들은 대입 개편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 열린 정책포럼 가운데 한 회차에서 서울‧경인입학처장협의회가 발제를 통해 목소리를 낸 것이 전부다. 공론화위에서 결정한 4개 의제에도 대학들의 의견은 사장됐다. 개편안이 확정된 이후 볼멘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선발 주체가 정작 ‘방관자’ 취급 받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대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만 남고, 선발주체인 대학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대학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뭘까. 대입제도 개편과 학종 관련 불만들에 대한 대학가의 반응과 생각, 향후 나아갈 방향 등 의견 교환이 절실한 때다. 대입정책 변화를 가장 절실히 피부로 느낄 현장 전문가인 대학 입학처장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봤다. 

■이어지는 학종 비판 여론…가짜 정보 기반 ‘학종 안티’ = 대입개편이 지닌 논란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최초 개편 논의의 출발점부터 주요대학의 학종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학종 확대의 반작용으로 대입의 ‘세컨 찬스’ 격인 정시가 줄어들자 ‘공정성’을 이유로 학종을 비판하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학종에 대한 비판은 대입개편안 발표 이후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일 취임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계속 발굴하고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같은 날 시민단체들은 ‘학생부 비교과 요소의 전면 폐지‧축소’를 외쳤다. 한 편에서는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또 다른 단체들의 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각기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결국 현 학종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11일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학종에 대한 질타는 이어졌다.

‘학종 안티’라는 말 이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적절한 표현은 없다. 정재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진보‧보수는 물론이고 대입전형에 대해 잘 모르는 목소리들까지 한 데 모여 ‘학종 안티’가 형성됐다. 서로 동일하지 않은 의견들이 뭉쳐졌는데 거인이 돼 대학들을 사면초가로 내몰았다. 매스컴도 죄다 학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만 쏟아놓는다. 부정적인 점들이 부각된 가짜 정보로 인해 현실이 왜곡돼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재찬 처장의 ‘왜곡’이란 표현은 외면받고 있는 학종의 긍정적인 면들에서 기인한다. 교과전형과 수능전형으로는 실패가 불 보듯 뻔한 학생들이 잠재력을 인정받아 합격한 사례들은 이미 대학들에 의해 숱하게 소개 된 바 있다. 실질적인 지표인지에 대해 이견은 있지만, 평등 내지 공평을 논할 때 주로 소개되는 특목‧자사고와 일반고의 선발비율이 긍정적인 전형도 학종이었다.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한 전형이 학종이라는 점에도 이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타 전형 대비 학점과 학교 만족도가 높고 중도 탈락률이 낮다는 점도 여러 종단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지난해 4월 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 서울권 10개 대학이 한자리에 모인 ‘학생부종합전형 3년의 성과와 고교 교육의 변화’ 심포지엄에서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다. 대구‧경북 입학처장협의회장인 배용주 경북대 입학처장은 “현재 우리대학은 논술을 포함해 모든 전형을 시행 중이다. 종단연구를 해보면 상대적으로 학종 입학생의 성적이 우수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학종이 줄기찬 공격의 대상이 된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공정성’에 대한 세간의 오해다. 김현준 경기대 입학처장은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 이번 개편안도 비교과나 글자 수를 줄이고 수상실적을 줄이는 등 형식적인 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대입의 공정성은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한 학생을 잘 선발하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인 공정성”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면만 ‘침소봉대’되는 경향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경인지역 입학처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은 “학종으로 인해 생긴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반면, 부정적인 부분들은 하나만 발견돼도 매스컴에서 ‘대서특필’한다. 논조부터 학종에 부정적인 경우도 많다. 숙명여고에서 벌어진 시험지 유출 의혹조차 학종과 연관지어 해석하려 한다. 고교에서 벌어진 교사 개인의 일탈이 대입전형의 신뢰성을 흔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학종에 대한 정론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학종 개편 ‘개선 아닌 개악’…‘거꾸로 내실화, 무엇으로 평가하나’ = 학종에 대한 비판이 한창이던 8월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인 2022학년 대입개편안은 학종에 ‘간소화’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자기소개서 항목과 글자 수를 축소하고, 교사 추천서를 폐지하는 등 제출서류 간소화에 더해 학생부 기재 간소화도 더해졌다. 수상경력은 학기당 1개로 총 6개까지만 기재토록 하며, 특기사항 기재분량을 3000자에서 1700자로 줄이는 등 전반적으로 학생부의 ‘볼륨’을 줄이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교육부의 학종 개선안에 대한 대학들의 반응은 ‘불만 일색’이다.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백광진 처장은 “학종 단순화는 내실화와 거리가 멀다. 분량을 줄이며 단순화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지금보다 더 자세히 기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내실화다. 대학이 평가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다 잘라내고 내실을 다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말로는 내실을 얘기하며 거꾸로 된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과 대폭 삭제‧폐지도 정답은 아니라는 게 대학들의 평가다. 배용주 처장은 “비교과 영역을 폐지하면 학생 선발이 매우 어려워진다. 대체 무엇을 보고 뽑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면접을 진행할 기초자료 확보조차 어려워진다. 다 없애고 통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과도한 조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권 대학 가운데 앞장서 학종에서 과감히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 제출을 폐지하고, 학생부로만 선발을 진행하면서 ‘착한 입시’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양대도 간소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정재찬 처장은 “지난 몇 년간 대학들은 나름대로 대입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는 목을 길게 빼 기린이 됐고, 누군가는 코를 늘려 코끼리가 되는 방식으로의 진화였다. 대학들이 노력해 만들어진 현재 모습을 놓고 이제 와서 목이 길어서 문제, 코가 길어서 문제라며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태계를 흔들어 놨으니 이제 다시 적응해야 할 일이 걱정이다. 그간 ‘착한 입시’로 평가받던 부분들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학종 비판의 첨병에 선 ‘공정성’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환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형식적인 공정성에만 매몰되면 위험하다. 학교생활을 잘한 학생을 뽑을 수가 없다. 학생부 분량과 항목을 줄이는 것을 놓고 공정성을 개선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불공정한 전형을 만들 수 있다. 대학이 평가할 수 있는 요소는 성적만 남게 된다. 학종이 만들어지기 이전 수능만 있던 시절과 달라질 게 없는 것이다. 학종이 만들어진 취지와도 동떨어진다"고 말했다.

결론은 과도한 정책 개입을 지양하고, 대학의 자율권이 회복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김현준 처장은 “입학사정관제는 10년간 운영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개선했다. 지금처럼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지역이나 규모에 따른 유불리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예를 들어 수상실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상위권 대학은 반대하는 반면, 하위권 대학은 찬성할 수 있다.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입시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2022학년 대입 개편안에 포함된 학종 개선안을 두고 대학들은 '개악'이라며 입을 모은다. 간소화를 표방하면서 내실을 다지겠다는 당초 계획은 온 데 간데 없기 때문이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2022학년 대입 개편안에 포함된 학종 개선안을 두고 대학들은 '개악'이라며 입을 모은다. 간소화를 표방하면서 내실을 다지겠다는 당초 계획은 온 데 간데 없기 때문이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풀지 못한 숙제…대학들 “한목소리 내기 쉽지 않아” = 2022학년 대입 개편안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한 대학들의 불만은 크다. 김현준 처장은 “학종 개선과 관련해 시민단체나 학부모들의 의견은 분명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대학의견을 일체 무시하고 너무 일방적인 의견만 반영된 것이 문제다. 실제 전형을 진행하는 대학 의견을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 측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원인으로 정치논리를 지목하는 분석도 존재한다. 백광진 처장은 “개편안을 두고 교육부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정말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육부 곳곳에 있다. 대입공론화 과정에서 대학들의 의견을 많이 청취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분위기도 느꼈다. 문제는 정치권을 한 번 거치게 되면 좋았던 정책도 왜곡돼 돌아온다는 데 있다. 이번 개편안은 교육의 논리도, 공정성의 논리도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대학 의견이 배제된 것은 대학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각기 처한 여건이 달랐던 대학들은 공론화 진행 과정에서 하나로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대전‧세종‧충남‧충북입학처장협의회장인 유인영 극동대 입학홍보처장은 “공론화 과정 중 37개 회원대학의 의견을 전부 청취해 취합한 자료를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의견을 단일화시키기 매우 어려웠다. 대학마다 학생을 선발하는 특성이 있고, 처한 여건도 각기 다르기에 대학마다 원하는 바가 전부 다르다. 지역별 목소리조차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은데 전국단위로 목소리를 내기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 입학처장도 동일한 의견을 보탰다. “같은 권역 내에서도 이미 위상을 공고히 한 주요대학과 후발주자 격인 대학들 간 대입전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한 대학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얘기하면 다른 대학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학 입시는 이래야 한다’는 원칙 수준의 담론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다.

대학들의 의견을 모으기 전 당면해있는 ‘무력감’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었다. 대학들의 의견을 모으기 전 선결돼야 할 과제라는 점에서다. 정재찬 처장은 “공론화가 끝난 후 대학들의 무력감이 크다. 얘기를 할 통로도 마땅치 않은 데다 반영될 가능성도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간 자율성도 포기하고 정부 정책에 순응해온 대학들이 마치 잘못의 주체처럼 취급받고 있는 구도”라고 지적했다.

대학들의 의견을 모으는 방법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누군가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짊어져야 할 수도 있다. A대학 입학처장은 “가장 큰 문제는 대학들이 담론을 만들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학종의 긍정적인 면을 들어 설득하려 해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대국민 교육부 시민단체 사교육업계까지 대학들이 상대해야 하는 전선이 너무 넓다. 이런 부분들이 정리되기 전에는 자신있게 견해를 내비칠 대학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대학들을 휘두르는 교육부의 정책방침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대학들이 사업 불이익을 의식해 자유로운 발언을 내놓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B대학 입학처장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대입전형을 연계해 놓은 탓에 대학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자칫 '미운 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에 포스텍이 대입 개편안에 반발하며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포기하고 입시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10억원 안팎의 예산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다른 대학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들은 포스텍처럼 행동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만약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한다면 기여대학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수준에서 재정을 무기로 대학들을 휘두르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대입정책을 구현하는 다른 방법을 정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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