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근 정화예술대학교 기획부총장

앞 수레는 지나온 역사를, 뒤 수레는 현재의 역사를 비유한다.
뒤 수레는 앞 수레의 바퀴 자국을 따라간다.

이승근 기획부총장
이승근 기획부총장

우리나라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인력양성의 관점에서 국가발전과제를 충실히 수행한 교육기관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실업계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중 전문대학은 역사 속에서 실업고등전문학교(1963∼1977), 전문학교(1970∼1978), 전문대학(1979∼현재)으로 발전적으로 변모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으나 국민 개개인의 직업적 성취나 능력 개발에 역점을 둔 교육정책이기 보다는 성장위주의 국가 전략과 공급자 중심의 경제개발적 논리에 따른 기술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비롯돼 교육 쪽에서는 산업교육진흥법(1963년)이 제정되고, 이후 “과학기술교육진흥 5개년 계획”으로까지 구체화된 부분과 궤를 같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6년 대학 정원 자율화와 1997년 고등교육법 제정으로 대변되는 5․31교육개혁은 기존의 교육시장 트렌드를 크게 흔들어 놓았고, 이로 인해 고등교육 진학률이 50% 이상 상승하면서 대학교육이 기존의 엘리트교육에서 보편화교육으로 바뀌는 지형변화가 일어났다.

현재의 전문대학으로 출범한 1979년을 기준으로 보면 내년인 2019년은 전문대학 40주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는 시기다. 필자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재직했던 23년(1995∼1918)이라는 시간 또한 역사 속에서 전문대학이라는 수레바퀴를 절반 이상 함께 끌고, 밀었던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시 전문대학만의 역사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많은 회환과 보람, 아쉬움이 함께한다. 1995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문대교협은 공식적인 교육부단체로서의 지위와 함께 전문대학의 대표기구로서 위상을 가지게 됐고 1997년 고등교육법 제정 시에 전문대학의 정체성과 포지션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대학의 교육목적 변경, 학위과정 명문화, 전공심화과정 도입, 대학명칭 자율화 등의 틀을 만들게됐다.

특히 전문대학의 교육목적을 기존 “중견직업인 양성”에서 “전문직업인 양성” 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고등교육기관에서의 직업교육분야를 보다 전문화하고 인력양성의 스팩트럼을 보다 다양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고등교육법에 적시된 조문화된 내용을 시행령이나 교육현장의 제도로 풀어내기에는 많은 제약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일반대학의 방해와 교육부 관료들의 고정화된 인식 등이 한몫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일반대학을 대표하는 대교협 관계자들은 “우리 회원대학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문대학의 확장성을 차단할 수밖에 없다”든지, 교육부 관료들이 전문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그 첫 일성으로 하나같이 “전문대학이 이렇게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푸대접받고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한다. 물론 교육부 조직 내 1개의 부서로 고군분투하는 현재의 전문대학정책과를 거쳐간 관계 공무원들 중 정책을 만들고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있기에 정책의 개선이 이뤄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전문대학 교수의 자격기준을 일반대학과 동일시하면서 전문대학 교수와 일반대학 교수의 호봉 단일화를 완성하는 데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2005년에 개선됐다.

특히 전문대학의 역사 속에 가장 뜨거웠던 장면을 떠올린다면 전문대학 구성원들로 합치해 결성된 “전문대학교육혁신운동본부”를 발족해 2005년 5월 25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전문대학 구성원 500여 명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대통령께 호소문을 보내는 비장한 결의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당시 전 언론들은 “전문대학이 뿔났다”라는 기사 제목 등으로 대서특필하며 전문대학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음을 국민에게 알렸다. 당시 성명서는 일반대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과 전문대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인력양성교육중심대학”의 투트랙(Two-Track)체제 개선, 전문대학 전공심화과정의 정규학사학위과정 개편, 정부조직에서 직업교육 전담기구 설치, 전문대학의 행·재정적 차별 철폐 수립 등을 건의했다.

이듬해 ‘2006년 전문대학 교육혁신대회 및 세계고등직업교육포럼’을 개최해 전문대학의 합리적 주장을 계속하게 됐고 이러한 주장은 이후 국회 입법활동 등을 통해 지속됐다. 2010년에는 국정감사 정책자료집(김춘진 전,의원)에서 “전문대학 차별의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됐고, 2011년에는 여야 정당과 대한간호협회 후원으로 “간호교육 학제 일원화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는 노력 등이 계속됐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전문대학 전공심화과정 개편 추진 계획안이 2006년 2월 27일 자 교육부총리(현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결재가 이루어지고 당해 국회를 통과해 2007년부터 학사학위전공심화과정이 시행되게 됐다. 또 차별화 과제 중 전문대학에 “교”자를 붙이는 “대학교” 명칭 개정(2009년), 전문대학 총장 명칭 사용, 전문대학 간호과 4년 과정(2011년)이 도입되게 됐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아쉬움과 열망으로 남는 것은 전문대학의 인력양성 체제를 다양화할 수 있는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수업연한 1∼4년)정책이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공약하고 2013년에는 입법 발의까지 됐지만 대교협의 방해에 막혀 18대 국회에서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이는 전문대학 차원을 떠나 국가의 바람직한 인력양성의 큰 틀에서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뒤 수레는 앞 수레의 바퀴 자국을 따라간다고 했다. 지난 5․31교육개혁 이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온 우리 전문대학이 이제 다시금 확실한 포지셔닝을 통해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굳건히 할 수 있도록 전문대학 구성원의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AI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서 전문대학이 이러한 개인의 역량 개발과 직업적 성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율성 기반의 교육체계 확립과 국가 책임의 고등직업교육 정책을 시급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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