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본지 논설위원/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사진은 웹하드 기고에도 넣었습니다!
배상훈 본지 논설위원

대학에 중장기 발전계획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경우 정부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3년 치 가계부를 미리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대학들도 반전을 노리면서 발전계획을 수립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발전계획을 중시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만들어왔다. 학생이 넘치는 태평성대였고, 경쟁도 첨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는 대학에서 구성원을 옥죌 것 같은 발전계획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학은 학과 또는 연구실이라는 소왕국이 모인 느슨한 조직이었고, 총장 임기도 4년에 그쳐서 중장기 발전계획의 효용성에 의문이 들만도 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대학도 하나의 조직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재정절벽 시대를 맞아, 사람을 뽑고 예산을 투자하는 데 중장기 비전과 안목이 필요해졌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교육적 책무와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계획은 잘 만들면 발전의 토대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 간 갈등과 비효율적 재정 운영을 초래해서 대학을 혼란과 쇠퇴의 길로 내몰 수도 있다. 대학마다 문화·풍토·여건이 다르지만,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할 때 고려할 점을 생각해본다.

먼저 참여적 프로세스다. 계획 수립 과정은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학이 가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여정이 돼야 한다. 어떤 대학은 전체 학과장과 교무위원이 참여하는 밤샘 워크숍을 열고 직원도 동참하는 회의를 거쳐 발전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많은 교직원을 중심으로 초안을 만드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참여적 기획을 이끌어갈 노하우가 부족하다면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전계획을 통째로 외부에 맡기는 것은 대학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무력감만 조장할 수도 있다.

발전계획의 핵심은 역시 비전이다. 비전이란 미래에 도달하려는 모습으로 대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와 철학을 담아야 한다. 형식적 수사보다 구성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명료하고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내용상 발전계획이란 이러한 비전과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단계적 노력과 변화의 프로세스를 정리한 것이다. 한편 비전과 목표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차별적인 존재 가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대학의 브랜드로 발전한다.

발전계획은 몇 사람의 식견이나 경험에 의존하기보다 객관적인 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반영할 때 설득력이 생긴다. 예컨대, 잘 가르치는 대학이 목표라면, 재학생의 집단적인 특성, 학습 패턴, 모자라는 역량과 강점에 대한 분석 없이는 교육 혁신과 발전 방안을 만들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계획 수립 과정은 대학의 역량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학이 추구할 목표를 도출하고, 이를 가로막는 문제를 진단하며, 목표와 문제의 간격을 메우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혁신 역량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발전계획을 수립하면서 대학은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어디에 경쟁력이 있는지를 찾을 수 있다. 지속가능 발전의 토대가 되는 대학 공동체도 만들어갈 수 있다. 발전계획을 제대로 수립하고, 이를 계획대로 이행할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대학의 발전과 생존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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