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 / 중화인민공화국 방문 회고기 中 ] 베이징대 방문… 역사 자료 교환, 문화ㆍ학술 교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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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헌 충남대 명예교수ㆍ 전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

한국대학신문이 1988년 창간된 직후 당시 홍남석 대표는 전국 대학신문사 주간 교수들의 학술과 문화교류를 위한 중국(당시 중공)방문을 추진했다. 1980년대는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이어 노태우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대 상황이었다. 더구나 대학은 학생들의 저항과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체포·구금 당하는 등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념적으로도 상당히 혼란을 겪고 있던 시대였다. 이에 공산국가의 현실을 학생 기자들에게 정확히 전달, 지도하고 아울러 베이징대학 등 대학 상황을 둘러보자는 목적으로 주간 교수들의 중국방문을 제안했다.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소련과 ‘죽의 장막’인 중공은 적성국가로, 감히 방문은 생각도 못 하던 그 시절에 홍남석 대표는 문교부와 안기부를 찾아다니며 중국방문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 베이징대학 초청 형식으로 방문이 성사돼 1989년 2월 12부터 21일까지 9박 10일간의 여행이 허락됐다. 본지 창간 30주년을 맞아 당시 충대신문 주간이었던 송백헌 충남대 명예교수가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방문회고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기행문은 송백헌 명예교수가 당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바탕으로소장하고 있는 사진 자료와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작성했음을 밝힌다. <편집자 주>

 

베이징 대학 정문 앞에서 단체 사진
베이징 대학 정문 앞에서 단체 사진

1989년 2월 15일 수요일 맑음

송백헌 명예교수
송백헌 명예교수

오늘은 중국 여행일정 중 중요한 베이징대학을 방문하는 날이다. 홍남석 대표는 이번 여행계획을 짜면서 베이징대학 부설 조선문화연구소 소장 최응구 교수와 연결돼 베이징대학 방문이 성사된 것이란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 참가 대학 교수들에게 조선문화연구소에 기증할 책들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교수들은 각자 준비해온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베이징대학이라 쓴 간판이 붙은 정문에 일행이 도착한 것은 9시 30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교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나서 교문을 들어가니 왼편으로 여러 동의 기숙사가 눈앞에 다가섰고 그곳을 지나자 연구동과 강의동, 도서관 건물이 연속 보였다. 대학본부에 도착하니 최응구·이선한 교수가 다가와 우리를 반겼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곧바로 총장실을 예방했다. 마침 총장은 공무로 출타 중이어서 라호재 부총장이 우리를 맞았다. 일행은 소회의실로 이동해 그 대학 학처장 등 학무위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부총장의 환영사에 이어 교무처장이 대학을 소개했다. 최응구 교수의 통역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희 베이징대학은 1898년에 설립된 중국 최초의 국립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의 명문대학입니다. 처음 경사대학당으로 시작한 저희 대학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1912년 베이징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습니다. 1952년에는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의 인문부와 사회과학부를 병합해 재조직했습니다. 1966년부터 1978까지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논쟁의 중심지였고, 논쟁이 격렬해지자 3년 동안 휴교조치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국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베이징대학생들이 관련돼있을 정도로 사회참여의식이 높은 대학입니다. 저희 대학은 기초학문이 우수한데 최근에는 응용학문과 첨단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는 우리 대학 캠퍼스에는 중국 전통식 건물이 많이 보존돼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혁명가·작가 등을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베이징대학의 역사와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어 우리 교수단의 단장 하일민 교수가 “오늘 우리 교수중국방문단은 귀 대학을 방문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희 교수단은 국교가 정상화돼 상호 간 자유로운 방문을 희망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귀 대학을 방문한 목적으로 귀 대학의 도서관과 조선문화연구소, 신문사의 자료 교환과 교류를 바라며, 귀 대학 교수들과 학술교류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귀 대학의 학교 요람과 소개 책자의 교환도 희망합니다. 이러한 방문 목적이 성실하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요지로 인사말을 했다. 회의를 마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간담회가 이선한 교수의 통역으로 이뤄졌다. 주로 우리 측이 질문하고 베이징대학 측이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학사 전반에 걸쳐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다.

조선문화연구소 앞에서 최응구 소장과 일행
조선문화연구소 앞에서 최응구 소장과 일행

다음으로 최응구 소장의 조선문화연구소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조선문화연구소는 개소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당국의 보조 없이 10여 명의 직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잡지 포함 2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게 된 영세한 연구소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는 국제 학술행사를 치렀고, 내년도에는 중국은 물론 일본·한국·미국·북한 등에 있는 학자들 500명을 초청해 8월 2일부터 4일간 국제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희 연구소에서는 조선민족문화대계를 간행할 계획인 동시에 중국에서 낳았거나 살았던 조선족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 전집을 간행할 계획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학자 20명을 동원해 중국의 역사서에서 우리나라에 관련된 자료를 뽑아 정리하는 작업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특히 자료가 빈곤해 연구에 지장이 많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한국 아세아문화사에서 2000권의 책을 배편으로 보내준다는 약속이 있어 고무됩니다.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최 소장의 연구소 소개가 끝난 뒤 유니쿱이 미리 준비한 대학신문주간교수협의회의 베이징대학 방문기념 벽시계와 한국대학신보를 전달했더니 그 대학에서는 대학을 상징하는 두 개의 문진을 우리에게 줬다.

총장실에서의 간담회가 끝나고 나서 박물관 옆에 있는 민주루(民主樓)라는 조그마한 단독 건물로 이동했다. 그 건물에는 조선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일행은 세미나실에 들어가 이선한 선생을 위시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각자 기증할 책들을 내놓았는데 그 숫자가 수백을 헤아렸다. 나도 나의 저서 3권과 우리 대학 학보사에서 발행한 책자와 신문축쇄판 여러 권을 보탰다.

연구소에 진열된 책자들
연구소에 진열된 책자들

연구소 측은 우리가 기증한 책을 보고 앞으로 매우 유익하게 활용하겠노라고 인사를 하며 흐뭇해했다. 이어 전시실을 관람했는데, 그곳에 진열된 책자들은 거의 북한에서 발행한 잡지나 간행물들로 조잡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연구소에서 나와 일행은 이 대학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웨이밍(未名) 호수를 찾았다. 너무 아름다워 마땅히 붙일 이름이 없어서 미명호라 부른다는 이 호수는 구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이다. 그 호수에 비친 8층의 탑이 보아(博雅) 탑인데 과거에 물을 보관하고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처럼 탑과 호수가 어우러진 넓고 한적하며 정서적인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대학의 학생들은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일행이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거닐며 낭만에 잠겨보는 동안 에드거 스노의 무덤에 이르렀다.

묘비에는 영어로 ‘중국의 미국인 친구’라고 새겨져 있었다. 스노가 1936년에 연안 시절의 중국 공산당을 취재해 쓴 《중국의 붉은 별》은 20세기 저널리즘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존재와 주장을 바깥 세계에 제대로 알린 은인이기 때문에 이곳에 그의 시신이 안장됐다.

가이드는 일행을 모아놓고 이 미명호와 호숫가에 우뚝 솟은 보아탑과 더불어 도서관을 베이징대학의 랜드마크이자 3대 명물로 치는데 이를 약칭해 ‘일탑호도’라고 설명했다. ‘일탑호도’란 하나의 보아탑과 미명호수와 도서관을 말한다.

보아탑이 보이는 캠퍼스에서
보아탑이 보이는 캠퍼스에서

호수를 산책한 다음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도서관 처마 밑에는 베이징대학도서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이 현판은 1978년에 덩샤오핑이 쓴 휘호라고 한다. 이 도서관은 면적이 총 5만㎡에 4000석의 열람좌석을 갖추고 있다. 1902년에 건립되고 1975년에 증축됐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마오쩌둥의 흉상이 서있고 벽에는 1998년 장쩌민(張澤民)이 이곳을 방문해 쓴 ‘백년서성(百年書城)’이라는 휘호가 붙어있다.

마오쩌둥의 흉상이 도서관 안에 있게 된 것은 마오쩌둥이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리다자오(李大釗) 도서관장의 조교를 겸해 이 도서관에서 잔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이 베이징도서관이기에 현대 중국을 건설한 이념적 토대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서문의 현판을 썼고,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도서관 현판을,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은 덕담을 썼다는 것은 중국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베이징대학과 도서관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대학 도서관 정문에서
베이징대학 도서관 정문에서

장서가 무려 700만 권이라고 하니 서울대 장서가 150만 권, 내가 봉직하고 있는 충남대의 장서가 겨우 20만 권에 이르고 있으니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베이징대학 도서관이다. 일행은 서고와 열람실 모습, 책을 검색하는 장면 등을 사진에 담고 각국어로 된 간행물을 발행하는 간행물실과 베이징대학 연구생원(대학원)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나서 시내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중국 철생산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강철공사를 방문했다. 입구에 우뚝 서있는 상징탑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상황실에 들어가 관계자로부터 이 회사에서 이뤄지는 제철과정과 강철공사의 내부시스템에 관련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직접 현장에서 그것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세미나실에 와 회사의 상황과 철의 중요성에 대한 슬라이드 상영과 강연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철 생산에 있어 세계 정상수준에 올라있는 포항제철을 여러 번 견학해 그 수준에 아직 못 미치는 이 회사에 흥미를 덜 느꼈다.

저녁 만찬 뒤 내일 고궁박물관 관람 후 시안으로 떠날 일정 때문에 호텔로 돌아와 베이징에서의 세 번째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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