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석 고등직업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주홍석 선임연구원
주홍석 선임연구원

교육기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인재양성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2017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이 발표된 이래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입사지원서에 학력 등에 대한 요구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게 됐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은 인적사항을 배제하고, 공정한 실력평가를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데필요한 지식‧기술 등을 공개하기로 했고, 이와 연계해 입사지원서는 채용직무와 관련된 지식‧기술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교육‧훈련, 자격, 경험 등의 항목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정책은 최종 학력이 무엇이고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기회가 달라지고, 취업 후 승진과 좋은 자리에 배정받는 기회가 달라지는 학벌사회의 불공정한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과거 대학은 사회계층 간 이동의 통로역할을 하며 가난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노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사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온 자녀들이 그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다시 그 학벌을 이어받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학벌에 따른 차별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더욱 불공정해진 학벌이라는 허들을 넘기 위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더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을 투자하도록 내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헬조선, 수포자, 이생망’이라는 신조어로 사회를 비난하고 자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 위해서는 학벌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해가야 한다. 이미 학벌은 노동시장에서 신뢰할 만한 신호기재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기업은 더 이상 학점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재선발을 위해 학점 이외의 능력을 요구해왔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각종 공모와 봉사활동, 어학연수 등 스펙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개인의 실무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자, 일부 기업은 많은 비용을 들여 그들만의 인·적성시험을 개발해 인재선발에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은 좋은 일자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대학 졸업 후에 1~2년을 다시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학벌주의는 연쇄적으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을 쓰게 만드는 체계를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학벌을 대체할 만한 수단을 찾지 못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그때마다 나오는 정책과 대안으로 어디에 줄을 서야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혼란은 노동시장과 교육시장 간에 소통이 모호하게 이뤄진 에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어떤 일을 할 사람을 어떤 평가를 거쳐 선발할 것인지 정확한 메시지를 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학은 학생이 어떤 곳에서 일할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어떤 교육을 실시했고, 그 교육을 받은 학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학점체계는 학술적 지식과 소양은 보여줄지 모르지만, 그 지식과 소양을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신호로 인한 혼란을 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능력중심사회가 지향하는 바다. 이를 위해 정부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만들고 KQF(한국형 국가역량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학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NCS 역시 어쩔 수 없이 학벌에 기대어 사회적 통용성를 얻고자 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NCS를 어떻게 학력과 매칭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기존의 평가시스템과 교육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 취업을 위해 치르는 시험 역시 이름만 달라졌을 뿐 기존의 평가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학벌주의 속에서 능력중심사회를 외치는 것은 공허하기만 하다. 어렵더라도 학벌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재양성모델과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어야 지금의 한 줄 세우기 경쟁이 아닌 보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고, 보다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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