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열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필자가 미국에 박사과정 유학길에 올랐을 때가 1990년이었으니 어언 30년이 다 돼가는 것 같다. 당시 공부 때문에 늘 잠이 부족한 나는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수업시간에 겨우 맞춰 등교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셔틀버스가 학교 가는 중간에 멈춰섰고, 버스를 타고 가던 동료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정류장엔 휠체어를 탄 장애학생 한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마주한 상황이라 내가 엉거주춤 지켜보고 있는 사이 동료 학생들은 앞쪽에 의자를 접어 공간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버스운전사는 운전대 옆에 있는 레버를 조작했다. 그러자 승차할 때 밟고 올라왔던 철제계단이 기중기 팔같이 펼쳐지면서 휠체어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ㄴ’자 모양으로 변했다. 버스 계단이 펼쳐지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너무 신기해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때 학생 중 일부가 버스 밖으로 나가 휠체어를 고정하고, 운전수가 레버를 조작하자 휠체어를 버스 안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동료들이 다시 휠체어를 풀어 미리 확보한 공간에 휠체어를 고정하고 버스는 출발했다. 셔틀버스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업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고, 동료들이 다시 장애학생의 휠체어를 버스 밖으로 내리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강의실로 뛰어갔다. 가슴속엔 그 장애학생 때문에 수업시간에 늦었다는 원망만 가득한 채로….

그 후에는 되도록이면 그 장애인 친구를 안 만나려고 등교시간을 바꿔보기도 하고,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내 차를 직접 몰고 학교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캠퍼스 어디를 가도 장애학생들이 쉽게 눈에 띄었고, 여기저기서 같이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니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장애인 친구들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고, 지나가다 휠체어가 틈새에 끼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자진해 뛰어가 밀어줬다. 물론 버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휠체어 탄 동료를 보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나중에 교육조교(TA; Teaching Assistant)가 돼 학부시험 감독을 들어갈 때, 학교 당국에서는 담당 과목에 장애학생 숫자와 등급을 미리 알려줘 시험시간을 차별 적용하도록 했다. 손발을 못 움직이는 중증 장애인은 전공이 다른 학과 TA들을 일대일로 붙여줘 학생이 서술하는 것을 답안지에 옮겨주도록 했다. 이렇게 장애인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장애 정도에 따라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대학 당국에 놀랐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대학 강단에 처음 서면서 캠퍼스에 장애학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무척 놀랐다. 거리를 돌아다녀도 장애인을 보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다 어디 갔는가? 그들은 모두 대학교육을 안 받는가?

교육부에서는 작년 말 ‘장애인 고용확대 추진계획’을 마련해 올리라는 공문을 각 대학에 보내왔고, 최근에는 교수 충원 정원(TO)을 내려주면서 여성과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배려해 선발하라는 공문도 보내왔다. 이러한 교육부의 지시와 방향은 당연하면서도 장애인 학생이나 교수를 선발하면 그들을 위해 강의실 배정이나 여러 편의를 시설을 갖추는 데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데, 가뜩이나 궁핍한 대학살림에 과연 그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나아가 지난해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2018~2022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특수학교 22곳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지으려면 지역주민들이 반대해 장애인 부모가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는 실정에서 이 계획의 완성을 위해 또다시 지역주민과 갈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대의가 좋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해보면 그러한 특수학교를 가까운 대학들로부터 신청받아 대학 캠퍼스 내에 지으면 어떨까 한다. 특수학교와 관련된 전공을 가진 대학이면 서로가 윈윈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선정된 대학교는 정부에 시설 및 운영과 관련된 비용을 지원받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은 캠퍼스 내 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필자가 오래전 경험했던 것처럼….

점심을 먹고 돌아와 주차장소를 못 찾고 여기저기 헤매면서도 텅 빈 채로 남아있는 장애인 주차공간을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 대학 캠퍼스에도 장애인 차로 주차장이 모자라고, 한국에서도 베토벤,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애인 명사들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꿈꿔본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