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토미 아유미 지음 박솔바로 옮김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할 입장이 아닙니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고위 관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답을 한다. “아니, 그러면 대답할 수 있는 입장인 사람을 불러주세요”하면 말을 흐린다. 이른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말하는 '입장'은 무엇이고 또 언어는 왜 판박이인가?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보다 자신의 직위 안전에 더 급급해하는 전문가들이 구사하는 기만적인 화법(저자는 이를 ‘도쿄대식 화법’이라 부른다)을 파헤친다. 저자는 학연과 지연으로 끈적끈적하게 엮인 엘리트 집단의 생태계를 ‘입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대중을 기만하는 그들의 행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엘리트들의 기만적인 화법에 속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한국과 일본사회에서 엘리트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저자의 분석대로,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력에 의한 차별이 당연한, 그런 광기에 지배되는 ‘이상한 나라’이므로. 이들은 언어를 통해 사회를 기만하고 커다란 폐해를 끼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엘리트들이 보인 행태는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경주 지진 이후 크고 작은 원전 사고가 끊임없이 보도되는 가운데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움직임 또한 번번이 드러나고 있다. 책임 회피에 여념이 없는 전문가들을 보면 일본의 그들과 판박이다.

이 책은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엘리트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러면 아이들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경쟁적인 입시교육을 통해 엘리트를 길러내는 사회는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기만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도쿄대 입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인지, 또 졸업 후에는 어떤 엘리트가 되는지를 살피며 학교교육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과 일본사회에는 ‘유대’를 강조하는 봉건사회 전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우리가 ‘입장’을 버리기 이토록 어렵다면, 차라리 ‘입장’을 지닌 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묻는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의 심성에 뿌리 깊이 깔려 있는 ‘불성’에 기초해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는 새로운 입장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저자 야스토미 아유미는 교토대 경제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현재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민들레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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