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대구보건대학교 대외협력팀장

김기형 대구보건대학교 대외협력팀장
김기형 대구보건대학교 대외협력팀장

필자가 처음 보도자료를 쓴 건, 1999년 9월로 기억한다. 기업에서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지 한 달 남짓 됐던 시기다. 직장 상사가 보도자료를 한번 써 보라고 했다. 주말에 총학생회 주최로 태풍 피해 농촌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내용이었다. 수 시간 동안 머리를 짜내어 두 문단을 작성, 보고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상사는 빨간 펜을 사정없이 쫙쫙 그어 나갔다. 내용의 절반 이상이 고쳐졌다. 기사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제 실력이 이런데 앞으로는 더 못 쓰겠죠?” 조심스레 묻자 “그래도 네가 제일 낫더라. 계속 써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끄러웠지만 뭔가 큰 사명감에 그날 저녁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보도자료 쓰는 법》이라는 책을 구해서 몇 번이고 읽었다.

두 번째 기회가 왔다. 미용경진 대회였다. 행사를 마친 후 빠르게 자료를 써서 팩스로 각 언론사에 보냈다. 그럼 사진은? 행사 사진이 중요한 것 같은데, 기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원하는 기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들 반응이 궁금해졌다. 먼저 행사 사진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40분 후 인화된 수십장 사진 중에서 잘나온 것 3장을 골라 추가로 10장씩 뽑았다.

그리고 관공서 기자실로 향했다. 각 신문사 기자들에게 입사한 지 두 달 됐다며 인사를 건넨 후 보도자료와 사진을 직접 전달했다. 놀라는 눈치다. 기자들 책상 위를 보니 각 기관에서 팩스로 들어온 보도자료가 빼곡했다. 저 자료들과 경쟁을 해서 이겨야 신문에 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음 날, 신문에 눈에 익은 사진과 글이 들어왔다. 금이야 옥이야 정성을 쏟았던 소산물이 활자화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홍보담당자가 됐다. 기획담당으로 입사했다가 두 달 만에 보직이 변경된 셈이다. 그때부터 20년 동안 보도자료 쓴 것만 2000건, 언론에 활자화돼 나온 수는 2만5000건이 넘는다. 자료를 보낸 다음날이면 새벽부터 신문을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다.

대학 내외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안에 대해 퍼블리시티(publicity, 자료를 작성하고 언론사에 보내는 작업)를 정하는 것은 홍보맨들의 특권이다. 기자보다 앞서 정보를 접하는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다. 때론 수많은 언론 매체의 기자가 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이 언론에 활자가 돼 나오는 감동과 보람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얼마 전 지인에게 타 기관장의 축사까지 쓸 때가 있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지인은 “축사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건데 그때마다 기관장이 되는 거 아니냐?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그 기관장이 많이 인용해 주셨을 때의 감동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다. 감동과 보람, 그리고 실망과 불평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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