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패를 가르치는 대학
[시론] 실패를 가르치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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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본지 논설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스탠퍼드나 하버드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실패를 가르치고 있다. 실패를 해보라며 자금을 지원하고 여러 번 실패해도 괜찮다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을 길러준다.

지난해 열린 '2017 서울미래컨퍼런스'에 참석한 짐 플러머 스탠퍼드대 교수는 스탠퍼드 공대의 실험적 강의 프로그램 ‘D스쿨’을 소개했다. D스쿨은 유연한 사고를 가르치기 위한 실습교육으로, 빠르게 여러 번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지식과 기술은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대체할 수 있다. 물리학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라는 책에서 ‘방사성 동위원소 덩어리가 절반으로 붕괴되는 반감기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절반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식의 반감기’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생성되고 확산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분석해 학문 분야별 지식의 반감기를 제시했다. 가령 물리학은 13.07년, 수학은 9.17년, 심리학은 7.15년이다. 응용학문은 기초학문보다 반감기가 짧다. 공학은 반감기가 3~5년에 불과해 늘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습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변화주기가 빨라질수록 재교육과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법이다. “21세기의 문맹이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의도적으로 잊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앨빈 토플러의 명언은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기에 딱 맞는 이야기다.

스타트업, 벤처 등 창업은 글로벌 트렌드이며, 우리 정부도 창업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많은 대학도 참신한 창업 아이템이나 기술을 가진 예비창업 대학생에게 입주공간이나 교육, 멘토링 시스템을 제공하는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창업에서는 무엇보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지만 창업의 산실이기도 하다. 창업 프로그램이 많은 스탠퍼드 대학이 실리콘 밸리 인근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이 만든 기업만 4만 개에 이르고, 대학생 창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여전히 창업보다는 안정적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선호하는 편이다. 실리콘 밸리와 같은 창업문화가 부족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적 성향이나 기질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의 차이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다르고,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과 실패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연구개발(R&D) 과제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학이나 출연연구소의 연구개발 과제 중 성공한 과제는 수치상으로는 90%가 훨씬 넘는다. 이는 과제 성공 여부가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부과제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스라엘은 성공률이 40% 수준이고 벤처대국 미국은 20%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미국시민들이 과제의 80%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발명왕 에디슨의 말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영어 단어 벤처(venture)는 ‘모험’을 뜻한다.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모험을 말한다. 창업은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프랑스어에서 온 기업가(entrepreneur)라는 용어는 단순한 제조업자나 상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벤처창업문화가 뿌리를 내린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 정말 부족한 것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다. 과학연구나 기술개발도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무수한 실패를 거쳐야 비로소 드물게 성공사례가 나타난다. 한국의 대학교육도 이제는 스탠퍼드대 D스쿨처럼 실패교육을 해야 한다. 성공한 연구의 결과나 모범적 성과만 가르치지 말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사례들과 무모한 실험들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어떤 식사 자리에서 일본에서는 실패를 연구하는 학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수한 실패 사례들을 모으고 분석하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글로벌 벤처기업들은 실패 경험이 없는 사람은 채용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실패를 알아야 성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에디슨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실패가 쌓인다는 것은 곧 점점 성공에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실패를 가르치는 대학들이 많아져야만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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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성 2018-11-26 19:20:45
어느것 하나 쉽지 않은 현재를 살고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실패'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좋은 글인것 같네요. 우리사회가 너무 성공, 성과, 실적이라는 듣기좋은 말에 빠져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