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행정(17)] 부분과 전체, 그리고 통찰
[대학행정(17)] 부분과 전체, 그리고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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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연말이 다가오면 대학은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 예산을 준비한다. 집행된 예산이 어떻게 쓰였는지,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관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면서 대학의 전체적인 행정역량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각 부서는 배정된 예산안에서 한 해 동안 잘 관리해왔을 것이다. 이러한 관리능력은 조직의 부분역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업무를 관리하기에는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관료제가 적합하다. 하지만 예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이러한 관리능력보다는 각 부분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이를 다시 배분할 수 있는 조직의 통찰역량이다. 이 통찰역량은 부분능력과는 달리 전체를 보는 힘이고, 이 역량에 따라 조직 전체의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부분역량에만 의존해 예산을 수립하게 되면 투입되는 예산은 단순히 각 부서의 산술적인 합이 되고, 투자한 예산에 비해 그 성과는 미미할 것이다. 반면 조직이 통찰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각 부서에서 요구하는 예산을 합한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고 투자한 예산에 비해 그 성과는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구성원 각자가 통찰역량을 얻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관료제의 기능이 더 세분화되고 고도화될수록 조직의 유기체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더 약화되고 전체를 조망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조직 전체의 목적은 희미해지고 수단으로서의 부분적 기능만 더 기형적으로 강화되기가 쉽다. 니체는 ‘한 가지만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결핍된 자들, 예컨대 하나의 커다란 눈, 혹은 하나의 커다란 주둥이, 혹은 하나의 커다란 배, 혹은 그 밖의 커다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들, 이런 자들을 나는 전도된 불구자라고 부른다’고 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관료제의 한계에 갇혀 이를 극복해내지 못하면 니체가 말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각 부서나 구성원이 조직에 대한 통찰을 통해 전체의 모습 안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찰역량은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깊이를 더해주고, 나아가 타자 또는 다른 조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강화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보편성은 여러 단계의 변화과정을 거쳐 확장되는데, 예산 분야 행정의 예를 통해 그 단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는 그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인식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회계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부서와 갈등관계를 해소할 공통적인 분모를 찾기가 어렵고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두 번째 단계는 대학행정 전체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주관적 관점을 내려놓고 객관성을 유지하게 되고, 다른 부서의 목적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행정의 기능적 관점을 벗어나기 어렵고, 조직의 궁극적인 목적을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이 기능적 관점을 벗어나서 조직 전체를 조망하고 하나의 생태계 관점에서 온전한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행정을 하는 데 있어 대학의 궁극적 목적인 교육과 연구를 항상 중심에 두게 된다. 그리고 예산뿐만 아니라 대학행정 자체가 대학의 고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올바른 쓰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 이후의 대학행정은 교육과 연구를 관료제 울타리 안으로 끌고 들어와 가두지 않게 되고, 오히려 행정이 교육과 연구를 위해 스스로 무한 변신을 하게 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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