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교수
주현재 교수

가을이 깊어지는 11, 올해도 어김없이 내년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트렌드 코리아 2019’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여러 트렌드의 변화 중에서도 컨셉팅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선정했는데, 김난도 교수는 2019년이 소비자들이 기술 등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기업들이 마케팅 중심에서 개성 있는 제품 색깔을 드러내는 '컨셉팅'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 듯 모를 듯 헷갈리는 컨셉팅이란 개념을 이해하려다 오래전 가을날 친구가 입고 나온 티셔츠가 생각났다. 친구의 반팔 티셔츠 한 가운데에는 큼직하면서도 매끈한 파이프가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란 문구가 새겨 있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 써놓다니!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그림은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의 티셔츠를 보며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만났고, 지금까지도 마그리트의 신기하고도 낯선 예술세계를 흠모하고 있다.

현재 전문대학은 고등교육법상 학교를 정의하는 용어 가운데 전문대학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점에 전문대학이라는 명칭 변경은 왜 필요한 것일까? 아마도 전문대학이라는 용어가 2년제 초급대학을 지칭하기 때문에 일반대학에 비해 하위의 교육기관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있고, 이것은 현재의 전문대학의 위상과 역할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리라. 하지만 전문대학의 명칭 변경만으로 이미지를 바꿀 순 없다. 그보다는 전문대학이 더 이상 전문대학(일반 대학의 하위 교육기관)이 아닐 수 있기 위해서는 참다운 전문대학(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같은 맥락에서 나는 모든 전문대학이 참여하는 집단지성의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학의 교원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교육의 과정 중 발생하는 어려움과 혁신의 걸림돌을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다양한 문제점과 고민 속에서 대학별 사례와 교수 개개인의 해법을 찾으며 모든 구성원들이 성장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의료계에는 이러한 집단지성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한 업체가 시작한 의사전용 지식, 정보, 공유서비스가 의료계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의사의 진단과 치료는 사례별로 매우 개인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환자 입장에서는 내가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업체의 솔루션은 전문의들이 함께 온라인 공간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눠 환자에게 적합한 최선의 치료법을 찾도록 돕는다고 한다. 이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빅데이터가 아닌가. 이러한 시도는 의료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의사들의 가입이 늘고 있는데 특히 경험이 부족한 군의관이나 지방 개원의, 젊은 의사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환자들이 더 안전하고 효과 좋은 치료의 혜택을 받게 되는 이점이 있다.

전문대학의 교원들에게도 집단지성의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의사들처럼 교수들도 대부분의 경우 각 대학에 갇혀 있거나 자신의 전공에 갇힌 채 학생들을 교육한다. 물론 대학마다 교수학습센터를 설치하고는 있지만 교수가 자발적으로 교수법을 개선하기 위해 혹은 학생지도(Guidance)에서 발생되는 문제에 도움을 받기 위해 학교의 본부와 동료교수를 찾아가는 일은 흔치 않다.

전문대학은 일반대학에 비해 대학의 서열화가 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집단지성의 체계 구축이 수월할 수 있지 않을까. 전문대학이 함께 모여 효과적인 교육의 길을 모색해야 하며, ‘경쟁보다 상생을 통해 모두가 강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둘 때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명제처럼 전문대학은 `이미지를 배반`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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