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공학

황은성 교수
황은성 교수

마이크로닷이라는 연예인이 부모의 사기로 의심되는 행적과 관련해 비난을 받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의 사기행적 때문이 아니고, “사실무근”이니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니 하면서 적절치 못한 대응을 해 공분을 산 것인데, 이 사태는 현재 우리 학계 연구윤리 현실의 한 단편을 떠올린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학술지의 국제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올 10월 현재 105종의 국내학술지들이 SCI색인에 등재됐고, 300종 가까이가 SCOPUS에 등재됐다. 이를 통해 우리의 논문들이 전 세계 학자들에게 읽히고, 더불어 피인용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open access 정책에 힘입어 국내 학술지들의 KCI 피인용지수도 급증하고 있다. 학자라면 소원하는 바, 즉 내 논문이 많이 읽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 바로 논문에 부정과 부실함이 있었다면 이것이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는 가정이 아니고 실제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PubPeer(pubpeer.com)는 연구자들 간 커뮤니티 활동을 도모해 연구의 질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한 공익재단의 웹사이트인데, 여기서 매우 활발히 일어나는 활동은 조작이 의심되는 데이터를 누가 찾아내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저자의 다른 논문들을 분석해서 부정행위들을 까발리는 일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 저자의 논문들이 이러한 끔찍한 해부를 당하고 있는데, 내 논문이 이런 이유로 인터넷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유명해지기 전에진 아무 문제도 없었고, 점점 사람들이 알아봐줘서 참 좋았는데 일단 유명해지니 과거의 잘못된 행적이 수면에 떠올라서 비난을 받고 망신을 당하게 되는 일이 지금 벌어지는 마이크로닷의 사태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마이크로닷의 경우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훈을 준다. 고의든 실수든 비난받을 연구부정의 행적을 갖고 있는 학자들은 이 마이크로닷의 케이스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얻어야 할 것이다. 연구에서 부정행위나 부실함이 있었음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인식됐을 때 “나는 연구부정을 행하지 않았어. 이는 모함이야“하고 우기는 것은 마이크로닷이 애초에 행했던 우와 다를 바 없다.

그의 팬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이 더 이상 동료학자로서 존중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나의 발표와 논문을 더 이상 거들떠보려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애초에 ”아 그건 우리 부모님과 관련한 일이니 정확히 알아보고 얘기하겠다“ 또는 ”알아보니 과거에 내가 모르던 부모님의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최대한 피해를 수습하는 노력을 하겠다“라고 했다면 국민들은 오히려 그를 ”정직한 사람, 바른 사람“으로 생각해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논문에서 연구부정의 한 조각이 드러났을 때, 비난을 최소화하고 학자로서의 얼굴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솔직함과 진정성이다. 논문의 어떤 내용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려서 동료 학자들이 나의 왜곡된 주장에 의해 피해를 더 이상 보지 않도록 수습해 줌으로써 그들의 존경(팬의 사랑)을 지켜내는 선택은 현실적으로는 징계가 불가피하다 해도 긴 학자의 길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동료학자들의 존경과 피해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정계에 등단하는 과정에서 연구부정이 드러났음에도 별 잘못이 없다고 당당해 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배울지는 뻔하지 않은가? 어쩌면 마이크로닷은 이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문제가 또 있다. 연구부정을 행한 교수가 있을 때, 대학은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한결같이 내 식구 감싸기에만 연연해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식구라서 감싸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착각해서 숨기려 한다는 것이 맞겠다. 구성원들의 연구윤리인식 제고에 가장 큰 걸림돌이 이런 대학본부의 잘못된 판단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야마나카 신야는 줄기세포 유도에 대한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해 줄기세포의 응용성을 크게 높인 공로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교토대학의 교수다. 2017년 그의 지도하에 있는 한 연구자가 조작을 통해서 만든 데이터로 유수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것이 있었는데, 교토대학은 이를 곧 인지하고 자체조사를 실시해 이 논문의 조작사실을 스스로 알리고 논문을 철회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가치인 ’진실‘ 보다 당장 눈앞에만 보이는 욕심, 즉 ’나의 체면과 안녕‘만을 좇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학계와 참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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