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 광주보건대학교 교수

김미 교수
김미 교수

언제부터인가 먹방이 대세다. TV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온통 먹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 처음엔 반찬 만드는 법이나 맛집 소개 같은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더니 요즘엔 골목상권을 통째로 살려내는 기적까지 보여준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고 이것들을 다 먹어보기엔 사람의 일생이 터무니없이 짧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SNS시대의 코드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불안감이 먹는 본능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거창한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견해는 호감의 법칙이다. 음식은 좋은 기분이라는 심리적 반응을 유발시키므로, 좋은 음식을 연결시키면 어떠한 대상에게도 좋은 감정과 긍정적인 태도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다루는 방송을 보면서 불쾌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음을 생각하면 가장 그럴듯한 설명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매우 특별한 경험이나 감성과 오버랩시키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도 어렸을 때의 그러한 기억들을 연상시키는 프로그램에 홀리듯 빠져드는 걸 보면 확실히 음식에는 먹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문득 소울푸드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원래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먹었다는 전통음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음식의 의미보다는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 추억이 담긴 음식, 그래서 삶이 지칠 때 위로를 주는 음식 정도의 의미로 각인됐다.

나에게도 소울푸드는 조금 특이하다. 어릴 적 백점맞았다고 부모님이 사주셨던 갈비, 결혼 전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만났던 근사한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그 리스트에 없다. 대신 언젠가 엄마한테 혼나고 울고 있을 때 무심한 듯 건네주던 아빠의 단팥빵이 맨 위에 있다.

철들 무렵 고향을 떠나 고등학교, 대학까지 마치고 상당기간 결혼생활을 타지에서 했다. 외롭고 힘들 땐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꼭 그 제과점의 그 단팥빵을 먹곤 했다. 빵 껍질의 달콤한 냄새, 팥고물의 말캉한 식감이 느껴지면 나는 어느새 일곱 살의 꼬마애로 돌아가 있다. 야단맞을 때의 억울함, 눈물 속에 밀려오던 달디단 행복감,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모두 되살아났다.

그렇게 몇 번씩 삶의 위안을 얻곤 했다. 묘하게도 다른 지역, 다른 제과점의 단팥빵은 그 느낌을 전혀 주지 못했다. 고향의 제과점 빵만이 소울푸드이자 힐링푸드였던 셈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단팥빵보다 어린 마음에 내 편이 있다고 믿게 한 아빠의 손길이 아니었나 싶다. 항상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준 아빠는 지금은 하얗게 센 머리에 걸음걸이도 불편하시지만 여전히 나의 아이들에게 단빹빵을 사주시곤 한다.

흔히 추억은 음식에 적히고 우리는 음식을 통해 추억을 음미한다고 한다. 음식은 추억이고 식사는 그 풍경이다. 결국 삶의 궤적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을 자동으로 떠오르게 하고 상큼하게 힐링까지 해주는 소울푸드처럼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제까지 나는 어떤 소울푸드를 나의 아이들에게 남겨주었을까. 나의 아이들도 타지에서 힘들고 위안이 필요할 때면 고향에 내려와 할아버지의 단팥빵을 찾아 제과점을 가는 것은 아닐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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