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계명문화대학교 교수

최준영 교수
최준영 교수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것은 결코 쉽거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람은 항상 본인의 생각만이 옳다고 보고 그것을 실행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은 성공의 이유를 자신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 거기엔 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겸손과 감사가 없게 된다. 남에게 베푸는 여유도 없게 된다. 그러나 타인의 희생과 은혜 덕분에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은 성공의 이유를 남에게로 돌린다. 겸손할 줄도 알고 감사할 줄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의 결과가 자신의 노력과 능력보다 타인의 희생과 은혜로 가능했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푸는 아량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말(馬)과 관련된 두 가지 예를 들어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비자(韓非子)의 설림편(說林篇)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에서 지혜의 해법을 찾아본다. 노마지지는 늙은 말의 슬기로운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으며, 사람이 무능하게 보여도 배울 점이 있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이 중신인 관중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소국 고죽을 토벌하러 나설 때, 관중이 항상 늙은 말(老馬)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전쟁이 시작될 때는 봄이었으나 전쟁이 끝나 회군할 때는 겨울이었다. 환공의 군대가 험로와 추위에 지치고 길마저 잃어 허둥대고 있을 때, 관중이 나서서 “늙은 말의 지혜를 빌리면 길을 찾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환공은 늙은 말을 수레에서 떼어 놓았고, 그의 군대는 늙은 말을 따라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됐다. 그 결과 환공의 군대는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환국(還國)할 수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다. 본인보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도 나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온 환공은 무릎을 치며 큰 깨침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그 후로는 웬만한 일은 신하들의 의견을 듣고 정사에 반영했다. 이처럼 노마지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또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경험에서 얻은 지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복잡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에서 비롯되는 만큼 열린 생각 속에서 늘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몽골인의 지혜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 세워진 비문에 “성(城)을 쌓는 자는 망(亡)하고, 길(道)을 뚫는 자는 흥(興)한다”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 칭기즈칸의 후예로 돌궐 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Tonyuquq)의 명언으로 유명한 글귀다. 성을 쌓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보려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보다 적극적으로 길을 뚫으며 미지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몽골족의 지혜는 어디서 나왔는가? 다음 정복할 목적지까지만 갈 수 있는 최소한의 말 먹이와 식량만으로 아주 신속하게 진격해 적을 진압·평정한 후에는 진출한 곳의 자원을 이용해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진출하는 전략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몽골의 말과 그 기동력이었다. 그들은 보병보다는 기병으로 질량과 속도를 높여 에너지의 크기를 극대화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정복한 민족이 될 수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초원에서 말을 살찌우고 늦가을 어느 날 바람같이 변방에 나타나 휩쓸고 가곤 했던 것이다. 변화와 이동을 모색하는 노마드(nomad)의 열린 의식이 희망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든 미래든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 그 어떤 조직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며, 열린사회를 지향해야만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만들어 개방적인 자세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외부의 변화를 빨리 받아들여 삶의 진로를 끊임 없이 수정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예로부터 성공한 위인의 뒤에는 지혜로운 부모나 스승이 있었다. 비록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늙은 말처럼, 범부의 삶 속에서 체득한 지혜를 토대로 자식이나 제자를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킨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없이 볼 수 있다. 지혜라는 말은 입으로만 내뱉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주변으로부터 활용할 수 있는 말(言)을 경청하는 자세에서 비롯될 수 있다. 최근 대학가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매우 혼란스럽다. 특히 사립대학은 대학 재정의 경직성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다행한 것은 한 학기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각계각층의 말을 듣고 최선의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열린 의식으로 최적의 지혜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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