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ㆍ교육 황폐화 우려" "구성원 책임을 전가하는 것" "학과 간 갈등 조장"
취업규칙 불리하게 변경할 시 노조 동의 구해야...갈등 불가피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사진=한국대학신문DB)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사립대가 신입생 모집을 교원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수들은 ‘세일즈맨’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학문과 연구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는 A 전 교수가 경주대 학교법인 원석학원을 상대로 낸 재임용 거부처분 무효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학교법인이 교원에게 신입생 모집 등 입학홍보 업무에 참여하게 요청하는 것 등은 교원 본연의 임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부수적인 업무"라며 "교원연봉계약제 규정을 통해 신입생 모집실적을 교원의 실적평가 대상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판결은 원심은 물론, 그동안 신입생 모집을 교원평가에 반영해 차등적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결과 상반된다. 

신입생 모집 실적이 교원 평가에 반영되는 것을 넘어 급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학교와 교수 간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원심인 2심은 "학생모집 같은 사항은 교원 본연의 임무나 그 수행을 위해 필요한 부수업무라 보기 어렵다"며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게 만들어 교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방해받을 정도에 이른다면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신입생 모집 실적 평가에 따라 급여를 삭감하는 것이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봤다.

앞서 2011년 감사원은 “교수의 급여를 신입생 충원율과 연계해 지급하는 부당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립대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통보한 바 있다. 해당 연도에 발표한 감사 보고서에는 교수 급여를 신입생 충원율과 연동해 지급한 강원도 동해시의 대학 사례를 담기도 했다. 

2012년 대구지방법원은 B교수가 영남외국어대학 학교법인 경북학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교원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한 취업규칙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는 신입생 충원율과 급여를 연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싣기도 했다. 

최근 대법 판결은 과거와 달리 학교의 손을 들어준 사실상 첫 사례라는 점에서 교수 사회의 충격이 크다.

신희영 경주대 교수협의회장은 “지방 소재 중소대학은 수도권 대학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신입생을 유치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담당 교사들이 그만오라고 할 정도”라며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매우 충격적이다”고 전했다. 

이어 “신입생 충원이 교수의 직무라고 판단한다면 입학홍보실적을 교수 업적 평가에 크게 반영하게 될 것이다. 교수들이 이에 열을 올리게 된다면 중소사립대는 연구는 물론이고, 교육 황폐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홍성학 전국교수노동노합 위원장은 “학과별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많거나 적은 학과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기본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 위원장은 “14조에 ‘교원의 신분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 판결대로라면 교원의 신분이 불안해 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학과 유연화 등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학과가 없이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학교도 있다”며 “융복합 시대에 고정된 학과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데 기계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명예 이사장은 “사립대는 법인이 모든 경영권을 쥐고 있다. 그런데 대법 판결은 경영의 책임을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신입생을 모집이 교수 재임용에 영향을 미친다면 대학이 기업과 다를 게 없다”며 앞으로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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