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섭 대교협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 250경(2.5x1027) 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 그릇된 데이터와 거짓 데이터가 있을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데이터 생산의 양과 속도다.

이미 정보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천문학적인 정보의 생산과 그것의 급속한 유통을 경험했지만, 이제 그 양과 속도가 직전 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빨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대한 데이터는 종래의 지식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결합해 새로운 지식을 낳을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지식 생산과 소멸의 주기가 점점 빨라질 것이란 것은 자명하다.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기술을 낳으며,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생산 방식과 그 방식을 통해 생산된 산물은 우리 삶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일례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은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에게 공동체와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것을, 자율주행자동차의 발전은 자동차와 관련한 우리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새로운 배움을 요구할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세대의 65%는 직업을 택하게 될 때,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영위하게 될 것이며, 평생 최소 여섯 번 직업을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빠른 기술발전이 불러 올 미래 직업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측에 근거한다.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환이 새로운 배움을 요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미국에서 직장인의 70%는 그들이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보고도 바로 그 다른 분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전제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새로운 배움을 게을리한다는 것은 도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말해왔다. 이 말이 함의하는 바의 하나는, 교육은 미래를 살 오늘의 피교육자들에게 그들이 미래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능력을 함양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제할 때, 미래를 예측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최선의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교육내용을 꾸준히 개선하는 것은 교육자와 교육기관의 당연한 책무가 된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펼쳐질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이 중점을 둬야 할 것은 더 이상 몇 년의 유효기간밖에 가지지 않는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전공교육은 아닐 것이다.

대학은 더 이상 한 직장에서 근무할 직장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간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이 중점을 둬야 할 교육은 무엇이 중요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능력,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정보를 추출하는 능력, 현상을 넘어 본질을, 부분을 넘어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 경계를 넘어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는 통찰력,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학습능력,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야말로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유익한 교육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산업화 시대에 대학 스스로 소홀히 해왔던 교양교육을 반성하고 재조명하는 것이 대단히 긴요하다. 교양교육은 자율적 학구능력을 키워주고, 인간·사회·자연을 폭넓게 이해하게 해주며,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있어 모든 대학생에게 필요한 일반·보통 교육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의 의의가 이러하다면 교양교육이야말로 이 시대가 대학에 요구하는 교육을 실현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교육의 중점을 이동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교육의 속성이 현재를 사는 교육자가 미래를 살 피교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나아가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대학교육의 중점을 이동시키는 과제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 1828년 예일대 보고서가 “우리의 목적은 어떤 직업에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에 공통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언명한 것은 오늘날 더 큰 유효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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