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그린버그 지음 이재욱 옮김 《바이마르의 세기》

바이마르의 논쟁은 모든 면에서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에서 가장 발전이 늦은 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독일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수적인 것은 당연했고, 1차 대전의 패배는 독일로 하여금 (독일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가장 진보적인 체제를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서 취급하도록 요구했다. 진보, 즉 민주주의를 수용해야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었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모순은 불가피했다. 파시즘의 등장은 모순적 논쟁을 파괴적으로 중단시켰다. 논쟁의 참가자들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을 떠났고 미국은 이들의 주장을 자기의 필요(반 사회주의, 반 소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했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곧 냉전과 동의어였다. 

그린버그가 소개한 5명의 망명자들(카를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프렝켈, 발데마르 구리안, 카를 뢰벤슈타인 그리고 한스 모겐소)의 이론들은 한결같이 모순적이다. 프리드리히의 이론은 국민주권을 엘리트의 책임으로 대체했고, 프렝켈의 집단적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다. 구리안의 이론은 민주주의를 종교적 신앙으로부터 유추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종교적으로 옹호했다. 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가 미친 영향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고, 모겐소는 냉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것은 보수주의에 이론적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가 반드시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일관성이 없는 이론, 정의조차 되지 않은 개념이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이 모순적인 가설들이 보수주의라는 이론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수적 정치 현실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훗날 프렝켈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루스벨트의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 책에서 특히 우리의 이목을 끄는 대목은 한국 사회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바이마르의 모순적 논쟁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한국 사회가 처한 모순이 세계사적 비극과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처음으로 이용한 사람은 반민특위 해산의 명분으로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이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은 이승만에게 반공주의적 정당을 창설할 자금을 제공했고, 트루먼은 한국을 ‘이데올로기적 전쟁터’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수행될 대규모 근대화 프로젝트가 공산주의의 저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고, 한국에서의 성공은 곧 미국의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승만은 반공주의의 국내적 사용법을 깨우쳤을 뿐이었다.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남북 간의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가 쉽게 버릴 수 없는 망령이 돼버렸다. 

저자는 현재 미국 대 유럽의 역사와 지성사,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디어들 간의 교차점, 정치 제도의 구축, 세계와 유럽의 교호 작용, 종교 사상이 그의 중심적인 연구 주제다. 그의 첫 번째 저작인 《바이마르의 세기: 독일 망명자들과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토대》(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2014)는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교육을 받은 영향력 있는 독일의 정치 이론가 5명이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의 형성에 참여하기까지, 그들의 지적ㆍ제도적ㆍ정치적 여정을 추적한 연구서로 2016년 유럽연구위원회의 도서상을 받았다. (회화나무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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