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국회서 열린 '고등직업교육기관-평생직업교육훈련에서 길을 찾다' 토론회 모습. 이날 토론에서는 직업교육 제도 개선과 직업교육법 제정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 한국대학신문 DB)
11월 1일 국회서 열린 '고등직업교육기관-평생직업교육훈련에서 길을 찾다' 토론회 모습. 이날 토론에서는 직업교육 제도 개선과 직업교육법 제정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직업교육 관련 법령에서 직업교육에 대한 법적 의미가 혼재돼있고 직업교육의 구체적 사항을 규정한 법이 없이 각 법이 산재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직업교육훈련 마스터플랜이 발표되고 액션플랜이 마련되고 있는 등 직업교육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 직업교육 관련법의 제‧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직업교육 관련법 정비, 기본법적 성격의 고등직업교육육성법 제정 주장은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올해 평생직업교육훈련 마스터플랜이 발표되면서 직업교육 관련법을 제‧개정해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운용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강하게 일었다. 현재의 산재된 직업교육 관련법으로는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현재 직업교육에 대해 교육기본법 제21조는 직업교육에 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직업에 대한 소양과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업교육 관련법 중 교육기본법 제21조의 내용을 제대로 구현해 직업교육에 관한 기본 사항을 규율하고 현재의 직업교육 관련법을 아우를 수 있는 기본법적 성격의 법령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실정이다. 직업교육 관련 법령으로서 이들 법령이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직업교육 관련법에는 직업교육의 개념이나 목적, 내용 등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근거 규정이 없고 대체로 직업교육보다는 직업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교육에 대한 용어도 ‘직업교육훈련’, ‘산업교육’, ‘직업능력개발훈련’ 등으로 제각각 달리 사용하고 있다.

직업교육 관련법이라 할 수 있는 법령들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산학협력법), ‘평생교육법’,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하 직촉법), ‘고용정책 기본법’,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등으로 퍼져 있다.

먼저 학교교육 영역의 직업교육에 대해 다루고 있는 법령인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산학협력법의 내용을 보면 현재 교육기관에서 이뤄지는 직업교육의 법적 근거나 목적, 내용, 재정 등에 대한 기준이 담겨있지 않다. 초‧중등교육법은 개별 학교의 설치 목적 정도만 규정하고 있고, 고등교육법은 교육기관별 설치 목적을 달리 규정했으나 실제 운영 현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또한 두 법은 직업교육에 대한 직접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산학협력법에서는 산업교육과 직업교육의 개념을 혼재해 사용하고 있다.

사회교육 영역의 직업교육 관련법이라 할 수 있는 고용정책기본법,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평생교육법은 대체로 직업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용정책기본법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능력 개발에 대한 기본 사항을 정하기 위한 근거법으로, 직업교육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도 학생이 아닌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법으로서, 직업교육에 대해서도 다루고는 있으나 직업능력 개발을 통한 직업훈련에 집중돼 있다. 평생교육법은 평생교육 가운데 직업교육과 관련된 교육활동을 포함하고 있는 법이다. 즉, 이 법에서 말하는 직업교육은 학교 정규교육과정을 제외한 조직적 교육활동 중 직업능력향상교육만 의미하는 것이다.

직업교육 영역의 통합법에 가까운 직촉법은 사실상 직업교육에 관한 기본법이라고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직업교육훈련과 관련한 직업교육, 직업훈련 등에 관한 정의 규정이 없다. 직업교육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정작 직업교육훈련의 정체성에 대한 근거 규정도 부재한 상황이다.

심지어 직촉법은 제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대학 직업교육 혁신방안 세미나’에서 직촉법에 대해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식물법’이다”라고 말했다.

직업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표현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직촉법이 1997년 제정될 당시 ‘산업교육진흥법’과 ‘직업훈련기본법’의 통‧폐합을 전제로 제정됐지만 이들 법률이 산학협력법과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실행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촉법은 직업교육 영역이나 직업훈련 영역에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직업교육에 대해 정확히 의미를 규정하고 직업교육 기관과 대상, 직업교육의 교육과정, 직업교육을 통한 성장경로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기본법 내지 주요 법령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에 관한 기본법을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으로 이분한 미국은 직업교육과 관련한 기본법으로 ‘퍼킨스(Perkins) 법’이라고도 불리는 ‘진로 및 기술교육법’을 두고 있다. 퍼킨스 법은 특히 직업교육이 현장에서의 기술교육 뿐 아니라 기초적인 학문과 소양을 갖출 것을 포함하고 있고 고등학교 및 직장으로의 연계와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은 직업교육에 관한 기본법적 성격을 갖는 ‘기술‧직업교육법’을 마련해 직업교육기관과 대상, 교육과정, 내용 등 직업교육을 위한 사항을 총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업교육에 대한 공공성과 국가적 책무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진로탐색교육, 직업준비교육, 평생직업교육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직업교육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고 직업교육을 통한 성장경로도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국과 일본은 직업교육 확산을 위해 각각 법 제‧개정을 통한 도제교육 강화와 전문직 대학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직업교육법제 정비 방안’을 연구한 이병규 고등직업교육연구소 연구위원(동의과학대학교 교수)는 “국가의 정책과 의지는 법으로 표현돼야 한다. 직업교육에 관한 정책도 법제 마련과 함께 추진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직업교육 선택자의 성장경로가 마련되고, 직업교육이 일반교육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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