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실 본지 논설위원 /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학자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학자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학자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보내며 다시 우리 교육의 쟁점과 과제를 돌아볼 시점이 됐다. 근래 100년 동안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급격한 성장과 성장통을 겪어 온 우리 교육계는 올해도 크고 작은 후진사회형 사고를 생산해 온 동시에, 가장 뜨겁게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는 고급 첨단 기술 보유국으로서 선진사회 진입 문턱에서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배태되는 다양한 문제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학습의 지평을 확장해온 교육계를 강타했다.

교육과정 위반 소송에 휘말린 ‘불수능’을 치른 초저출산국가의 생때같은 고3 학생을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잃었고, 오병이어 수준의 급식 등으로 비리 유치원에서 무럭무럭 자라지 못한 채 시달리고 있는 금쪽같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렸으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믿으며 대입전형 준비에 여념이 없던 여고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고,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스승이 떠올리기조차 힘든 추행과 폭행을 범한 학교와 대학에서 연일 스쿨미투가 벌어지는 걸 죄스런 마음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연례대로 ‘2019 교육부 업무보고: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 미래를 열어가는 교육’과 마주하며 수십년째 다이어트한다는 친구와 수년 동안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조직이 떠올랐다. 이는 말로만 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다이어트나 혁신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분위기 파악에 나선 탓인지 올해 업무보고는 이례적으로 과거 정책추진의 ‘아쉬운 점’을 담고 있다. 스스로 밝힌 교육정책 추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교육분야 신뢰 회복을 위해 교육부 자체 혁신부터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학내 교수와 송사를 지속하며 복잡다기한 문제를 야기해 온 S대학과 교육관료의 검은 거래가 원인이 됐을지는 몰라도 교육정책은 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구현돼야 하므로 늦었어도 반가운 일이다.

모든 아이들의 평등한 출발인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한글·수학·영어 등 학교 교육기회를 국가가 책임지며, 미래사회를 선도할 교육혁신을 위해 미래 역량 제고에 초점을 둔 학생중심형 학교교육 혁신방안을 도입하고, 대학이 지식창출과 지역성장의 거점이 되도록 자율적인 대학 혁신사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취지가 나쁜 정책은 없다. 아쉬운 점은 거의 모든 정책이 적극적으로 교육공동체의 자발적 동기를 유발해 혁신의 주체로서 만족을 체감할 방안이라기보다는 반복해 드러난 오래된 문제 대응에 급급한 불만 위생요인을 잠재우는 방식이다.

중진국 최상위 수준에 도달한 국가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없던 길을 열어야 하고 이 길은 벽을 넘는 사람이 나아가는 것이다. 오래되고 반복되는 논의에 머무는 혁신정책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교육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교육혁신은 없던 길을 개척해야 하기에 상상력과 창의력 발현이 필수적이다. 발전단계상 교육선진화 과제는 산업화나 민주화 과제에 비해 추상성을 내포하게 되므로, 추동세력 결집도 쉽지 않다. 게다가 축약적 발전을 경험한 사회에는 각자 성공시대 기억에 매몰된 1차, 2차, 3차 산업세력이 모두 들러붙어 있는 유리천장이 도처에 놓여 있어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지난 여름 온 나라에서 공청회를 열고 논의한 대입제도 개편안에 접한 후 어느 인문학도는 “한국교육정책은 완전히 상상력이 고갈됐고,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능력이 상실된 것 같다”고 했단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특유의 역동성마저 잃을까 걱정이다.

아인슈타인이 똑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라고 했듯이, 유사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지금은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교육혁신정책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자발성을 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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