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성원 50%가 외국인…일어·영어로 수업
교수 일방적 수업 지양하고 TA제도 도입
400여개 기업 후원금은 학생 장학금으로

한국대학은 위기다. 전 세계적 흐름인 4차 산업혁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학들에 변화를 강요한다. 우리나라는 특유의 문제인 '학령인구감소'까지 여기에 더해진다. 당장 직면하게 될 신입생 유치에 대한 걱정부터 변화를 통한 미래 발전상 생각까지 대학들의 머리는 복잡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해외 대학들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녹여낼 수만 있다면 악조건 속에서도 발전은 성큼 다가온다. 한국대학신문이 우리 대학들이 참고해야 할 해외 대학 성공사례를 선정, 그들이 가진 노하우와 성공의 밑바탕이 된 변화상들을 소개한다. 선행사례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적용함으로써 세계 어디에 내놔도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하게 될 국내 대학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교 (APU) 전경 (사진 = APU 홈페이지)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교 (APU) 전경 (사진 = APU 홈페이지)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학생 50%를 국제학생들로 채우고 50개 이상의 나라와 지역출신 학생들을 입학시키며 교수의 50%를 외국인으로 채용하겠다.” 무모한 설립 조건을 내세워 ‘무조건 실패할 것’이라는 반응을 받았던 한 일본 대학이 이를 완벽히 실현하며 세계적인 교육 혁신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개교 20여 년 만에 일본 톱 글로벌 대학교로 이름을 굳힌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교(APU)의 비결은 ‘세계화’와 ‘다양성’. 미래 교육 키워드와 그대로 부합한다. 전 세계 각 지역에서 모인 학생이 절반을 차지하는 초글로벌 대학으로 급부상한 APU에는 현재 재학생 6000여 명 중 3000여 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자유, 평화, 휴머니즘’을 기본 이념으로 학생 반수를 세계에서 모집하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지극히 드문 콘셉트로 만들어진 대학이다. 설립 목적 자체가 ‘세계화’인 셈이다.

■ 60여 개국 3000여 명 유학생 유치…학생·교수 반이 외국인 = 일본 규슈(九州) 온천도시 벳푸(別府)시. 벳푸 만을 내려다보는 구릉 위 12만여 평 부지에 APU의 갓 지은 교사가 늘어서 있다. 일본대학답지 않게 교정이 널찍하고 교사는 갓 지은 듯 단정하다.

2000년 개교한 APU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학교를 짓기 전 382개 기업과 그 외 개인으로부터 41억 엔(426억원 정도)의 장학기금부터 조성했다. APU를 지지하는 Adversary Committee(AC)를 만들어 기업을 순방하며 기업들을 AC에 등록시킨 게 후원금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냈다. 기부금과 후원금은 고스란히 학생에게 투자된다.

대부분 과목은 일본어와 영어, 2개 국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유학생은 일본어로 말할 수 없어도 영어가 되면 입학할 수 있고, 졸업할 때까지 일본어를 익혀 일본 현지에서 취업할 수도 있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해외에서 안심하고 학생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교수와 강사도 인원의 절반이 외국인이다.

지난 2014년에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선발한 ‘슈퍼 글로벌대학’에 히토쓰바시대학, 고베대학 등 유명 대학을 제치고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대학원이 아닌 학부에서 체계적인 글로벌화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대학은 일본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3000여 명 유학생이 모여들어 재학하고 있는 비결이다.

■ 학문 ‘블렌딩’하고 ‘배우는 법’도 탄탄히 다져 = APU에는 ‘아시아태평양학부’와 ‘국제경영학부’가 있다. 아시아태평양학부에서는 국제적 시점에서 지역과제를 발견하고 환경, 관광, 문화 그리고 국제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뒤섞어 새로운 학문을 만든다.

국제경영학부에서는 세계수준의 비즈니스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글로벌 니치 톱(GNT; Global Niche Top)에 대해 연구하고 일본과 세계를 잇는 새로운 경영학을 목표로 한다.

강의실에서 일방적인 수업은 이뤄지지 않는다. 대신 우수한 선배학생들을 TA(Teaching Assistant)로 양성해 수업운영에 참가하게 하고 학생들끼리 서로 가르치면서 배우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신입생들의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신입생을 위한 2가지 ‘레시피’가 있다. 1학년 전원이 이수해야 하는 1년 차 교육과목인 ‘워크숍Ⅰ’과 ‘워크숍Ⅱ’다. 특정 전문분야를 배우기 위한 수업이 아닌 ‘배우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리포트 작성법이나 문헌조사 방법 등을 익혀 리포트와 논문을 자신의 사고와 자신의 말로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 ‘4가지 100’으로 ‘3가지 50’ 달성 = APU의 교육목표는 ‘4가지 100’이다. 첫째 100은 신입생 교육기숙사 100%다. 다문화·이문화 체험 등 교육효과가 높은 국제 교육기숙사 AP하우스를 유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인 학생을 포함한 전 신입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교육기숙사로 활용한다. AP하우스에서는 2인 1실의 방에 각기 다른 국적의 학생이 묵으며 서로 배우는 구조를 만들어 간다. 다문화를 피부로 배울 수 있는 현장인 셈이다.

두 번째 100은 다문화 환경을 활용한 수업에서의 협동학습 실천 100%다. APU의 다문화교육환경을 활용해 학생 참가형으로 유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서로 배우고 협동학습을 하는 과목을 100%까지 확대한다. 이를 위해 세계에서 활약하는 졸업생의 전문분야, 경험,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다.

일본인 학생의 다양한 해외경험을 100% 이루자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재학기간 중 일본인 학생이 한 번은 해외경험을 하는 구조다. 전략적 연계를 진행하는 해외 거점을 10개 대학으로 확대하면서 유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혼재하는 그룹에서 복수의 나라, 지역 조사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유학 프로그램도 전개한다.

100개국에서의 유학생 조치도 그중 하나다. 지금까지 아시아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우수 고등학교와 직접 진학 루트를 아프리카·미국·유럽·러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넓혀가고 있다. 동시에 고등학교 1·2학년 단계부터 다문화 교육환경에서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APU와 적성이 맞는 지원자를 찾는다. 이는 ‘50개 이상 나라와 지역출신 학생들을 입학시켜 학생 50%를 국제학생으로 이루고 교수의 50%를 외국인으로 채용하겠다’는 설립 목표를 상회하는 수치로 달성할 수 있는 비결이다.

APU 학생들이 모국 전통의상을 입고 졸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APU 홈페이지)
APU 학생들이 모국 전통의상을 입고 졸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APU 홈페이지)

■ 학령인구 감소 속 유학생 유치로 돌파구 마련…“로컬이야말로 글로벌” = 일본 문부과학성의 ‘대학 기본조사’에 따르면 18세 인구는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18세를 맞이한 1966년 249만 명을 피크로 점점 줄어들어 1992년의 205만 명에서 2014년에는 118만 명까지 감소한 후 지금까지도 가파른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대학정원 미달 사태를 초래하며 현재 일본 4년제 사립대학 입학정원 무려 40%가 넘게 미달이다.

그런 일본 중에서도 벳푸라는 시골에 전대미문의 글로벌 대학이 생기면서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벳푸시가 단숨에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그 덕분에 벳푸시는 젊고 활력 있는 국제도시로 바뀌었다.

인구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습득해 일본문화에 친숙해지고 일본 기업에서 일한다는 새로운 유형의 ‘해외에서 온 이주자’가 늘고 있는 것은 암흑 같던 일본 미래의 밝은 희망이 되고 있다. 일본의 한 ‘로컬’이 그야말로 ‘글로벌’한 곳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고레나가 순 APU 전 총장은 도서 『대학의 위기, 뒤집어보면 기회다』에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일본은 앞으로 이민국가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60여 개국에서 모인 국제학생과 일본 국내학생이 섞여있는 APU 캠퍼스가 일본의 밝은 미래 본보기가 돼 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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