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경일대 교수 / (사)대학정책연구소 이사장)

박규홍 본지 논설위원(경일대 교수)
박규홍 본지 논설위원(경일대 교수)

100년 전인 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27개 전승국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강화회의를 열었다. 이때 윌슨 미국 대통령은 파리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전년에 그가 연두교서에서 밝힌 ‘14개 조(Fourteen Points)’ 덕분이었다. 민족자결주의가 표명된 이 14개 조에 힘입어 유럽 여러 국가가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강대국에 강점된 세계 곳곳의 약소민족들이 독립에 대한 희망을 키우게 됐고, 그 의의만큼이나 고통과 좌절감이 컸던 우리 3·1운동도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제강점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는 이 해에 벽두부터 날아든 일본 지도층의 발언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를 다시 헤집는다. 강압으로 우리 삶의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했던 그들이 이제 ‘국제사회 룰’을 운위하며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판결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룰‘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의 원인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가능하겠으나,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학문과 고등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이다. 개혁과 개방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실학‘이 크게 꽃피울 수 있었더라면 망국의 불행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지금의 대학 역시 큰 변혁이 필요함에도 머뭇거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대학혁신이 성공해야 국가가 산다. 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이 시대의 명제다.

지금 지구촌은 난민, 무역전쟁, 기상이변, 환경파괴, 양극화 등등의 사태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하루가 무섭게 발달하는 첨단기술도 인간이 섰던 자리를 시시각각으로 잠식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인구절벽, 청년실업, 고령화 등의 난제에도 직면해 있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전부 더 나은 답을 필요로 하는 연구의 대상이요, 이에 대한 공부가 바로 이 시대의 실학이다. 무한히 펼쳐져 있는 이 미답의 실학을 우리가 한반도에서 만개시킬 수 있도록 늦지 않게 대학혁신을 감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유전자가 있다.

대학혁신의 방법이나 도달점에 대한 판단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방법론을 취하든 학문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복잡미묘한 국제관계에서 악취나는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대학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될 대상은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5G, 3D·4D 프린터, 자율주행차 등 첨단의 기술이 지식지형도나 생활생태계를 급속하게 바꾸어 놓을 이 시대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유로운 학문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연구분야를 한정하거나 연구시한을 강제한다면 제대로 된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제까지의 정부 주도 지원방식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 아침에 들려온, 가해의 역사에 대한 미안함은 눈곱만큼도 찾기 어려운 그들의 목소리에 분노보다도 재판과 조사가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법농단‘의 치부를 들킨 듯한 부끄러움이 먼저 엄습한다. 정부가 대학인들과 함께 ’21세기 실학‘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대학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일은 그 부끄러움을 씻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대학다운 대학에서 성장한 인재다운 인재들의 힘으로 과거의 치욕을 씻고 새로운 화합과 평화의 미래를 연다면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겠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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