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백형찬 교수
백형찬 교수

대학이 탄생한 것은 언제일까? 학문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나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학 역사의 세계적 권위자인 해스킨즈는 자신의 저서 《대학의 기원》 첫 페이지에서 ‘대학은 주교좌성당이나 의회제도와 같이 중세의 산물이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다면 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대학은 창설자도 없다. 또한 언제 시작됐는지도 분명치 않고, 명백한 기록도 없다.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대학의 발생을 촉진시킨 것은 르네상스였다. 11세기에 이탈리아 학자들과 스페인 학자들을 통해 새로운 지식들이 대거 서유럽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중세 암흑시대 동안 교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그리스 철학책과 의학책 그리고 법학책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이러한 사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중세에는 모든 지식을 교회가 독점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책도 서고에 감춰져있었다. 《시학》은 읽는 자에게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는 기쁨이 신앙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고 《시학》책을 감춰두었다. 그런데 이를 몰래 꺼내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책에 묻은 독 때문에 죽어갔다. 누군가 책에 독을 묻혀놓은 것이다. 윌리엄 수사가 이를 하나씩 밝혀나간다. 이렇게 교회 깊숙이 숨겨진 지식들이 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의 새로운 스승으로 다시 등장하게 됐고 법학과 의학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 학문도 맛볼 수 있었다. 또한 계산도 로마 숫자로 어렵게 하지 않고 아라비아 숫자로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지식들은 중세 교회의 모든 권위적인 교육을 무너뜨렸다. 새로운 지식은 알프스 산을 넘고 지중해 바다를 가로질러 ‘기꺼이 배우고 기꺼이 가르치려고 하는’ 열성적인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것이 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알프스 산 너머로부터 수백 명의 배우려는 사람들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볼로냐로 몰려왔다. 당시 볼로냐는 로마법 부활의 중심지였다. 상업과 도시가 크게 발달함으로써 각종 법률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한 법률지식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사람들이 볼로냐에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볼로냐의 밝게 빛나는 별’이란 별명을 지닌 패포 교수가 있었고, 이루넬리우스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중세의 수많은 위대한 법률 교수 중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들에게 법학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집을 멀리 떠났기에 가족도 보호자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스스로 보호해야 했기에 단결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만든 조직이 결국 대학의 효시가 됐다.

그들은 이탈리아에 널리 퍼져 있던 동업조합인 길드를 모방해 학생 조합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학(university)이란 말은 원래 집단 전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대학이란 말은 우주(universe)나 학문의 보편성(universality)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은 학생이나 교수의 조합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볼로냐 학생들은 조합을 그 도시 주민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사용했다. 셋방을 얻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볼로냐로 몰려왔고, 이로 인해 방값과 물가는 급등했다. 학생 개개인은 주민들의 이러한 부당이득 행위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학생들은 일치단결해야만 했다. 그들은 볼로냐를 떠나겠다고 주민들을 위협했고 끝내 주민들은 학생들에게 항복했다. 당시 대학은 건물과 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고 강력한 스튜던트 파워를 가진 학생들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은 초기 대학의 원형이다. 따라서 현대의 대학들은 볼로냐 대학의 직계 자손이라 할 수 있다. 중세의 대학은 대학본부, 강의실, 실험실, 도서관, 박물관 등의 건물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사회도 학생회와 교수회도 없었다. 이렇듯 중세의 대학은 ‘유형의 물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고, 오직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었다. 그렇게 대학의 역사는 시작됐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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