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규제혁파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5일 대통령 주재로 ‘2019 기업인과의 대화’가 있었다. 기업인들은 규제완화를 한목소리로 외치며 ‘행정명령 규제 필요성 입증책임제’를 다시 거론했다. 이 제도로 5·31교육개혁 당시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의 5332건에 달하는 정비대상 행정명령 중 2693건만 존치됐다. 얼마나 많은 교육규제가 교육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막아 왔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그렇다면 오늘의 상황은 어떤가?

며칠 전 퇴직을 앞둔 총장과 환담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연임의사를 물었더니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대학 총장을 3D 업종의 하나라고 했다. 총장직을 수행한 4년 동안 남은 것은 몸의 상처뿐이란다. 실제로 그는 재임하는 동안 3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그에게 물었다. “지난 4년간 총장직 수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정부의 각종 규제로 대학 교육개혁을 할 수 없었다”는 답이다. “소속대학은 지속가능하리라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정부의 규제혁파에 달렸다”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대학을 얽어매고 있는 규제만 풀어주면 대학들은 잘 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학현장에서 규제는 여전히 강고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는 사학을 비리집단으로 보는 프레임(frame)을 국가발전의 원동력 내지는 파트너로 보는 프레임으로 바꿔야 함을 역설했다.

그의 말대로 대학은 위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지만 규제의 틀 속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도 출범초기부터 규제혁파를 강조했지만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감도는 미미할 따름이다.

이웃 나라 대학 혁신사례는 우리나라 대학에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 개혁 자체가 현행 법령안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혁신 의지는 있지만 실행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대학이 애처롭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미네르바대학(Minerba School)과 ASU(Arizona State University)와 같은 혁신 대학은 탄생할 수 없다. 불법이기 때문이다. 형식과 관행이라는 틀에 갇혀 실행할 수도 없다.

연초부터 신기술·서비스 분야에 규제샌드박스 도입이 주목을 끌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는 현행법으로 시행이 어려운 기술 서비스지만 임시로 테스트하거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제도다. 최장 2년간 테스트 할 수 있고, 2년 더 허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일단 신기술·서비스 분야에서라도 이런 제도가 도입된 것이 다행스럽지만 이 기세를 몰아 사회 전 분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진보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교육서비스 분야에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해 대학의 혁신의지에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는 한 강연에서 불과 10년 후인 2030년이 되면 현 4년제 대학들 절반이 없어지고, 마이크로 칼리지(Micro college)가 급부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변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학들이 변화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교육분야에서 혁신적인 시도가 만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기 바란다.

에듀테크(edutech)의 눈부신 발전은 기존 교실 안 수업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변화에 순응하는 대학은 살고 안존하거나 역행하는 대학은 죽는다. 온갖 규제에 얽매여 고사(枯死)하고 있는 대학들은 이 규제의 사슬을 끊어내는 미다스의 손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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