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3일간 제주서 입학사정관협의회 워크숍

28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년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역량강화 워크숍’을 관통한 주제는 '고교 학점제'였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28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년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역량강화 워크숍’을 관통한 주제는 '고교 학점제'였다.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28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년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역량강화 워크숍’이 막을 내렸다. 700여 명의 대학 입학사정관과 입학관계자들이 참여한 이번 워크숍은 빼곡한 일정으로 채워졌다. 첫날에는 미래형 대입제도 관련 활발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으며, 둘째 날에는 사정관 전문자격화 등에 관한 논의와 대학별 사례공유 등이 열렸다. 마지막 날은 2025년 전면 도입을 앞둔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육부·대학 등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꾸려졌다.  

여러 형태와 주제의 발표·토론 등이 있었지만, 결국 이번 워크숍을 관통한 주제는 ‘고교 학점제’였다. 첫날 토론 주제인 ‘대입전형의 공정성 강화 및 미래형 대입제도 방향’의 결론도 종국에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진로맞춤형 선택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이외 나온 논의들은 중요도가 낮았다.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확보나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충, 미래교육에 있어 수능이 적절한 평가도구인지에 대한 논의 등은 여러 차례 다뤄진 주제라는 점에서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 2025년부터 본격 시행하는 것으로 발표한 고교 학점제는 아직까지 ‘말이 많은’ 제도다. 시행 여부도 다소 불투명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워크숍을 위해 모인 입학사정관들이 더 이상 고교 학점제 시행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한 입학사정관은 “현 학생부종합전형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도입되던 10여 년 전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정량평가에 매몰돼 있는 국내 사회가 과연 정성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고교 학점제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미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시작됐고, 학생들에게 동일한 교육과정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미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고교 학점제 도입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 과목 선택권 확대 ‘방점’ = 고교 학점제는 간단히 말해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는 제도다. 현행 대학교육에서 사용되는 수강신청제도와 비슷한 제도라고 보면 된다. 누적된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학생 스스로 과목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고교 학점제는 과목 선택권 확대에 ‘방점’이 찍힌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좇는 현행 교육에서 탈피, 진로·적성을 고려한 맞춤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 고교 학점제가 목표하는 바다. 

현행 교육제도와 고교 학점제를 가르는 또 다른 지점은 ‘이수·미이수’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일정 시간만 채우면 무조건 해당 과목을 끝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이수 제도를 신설,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야 학점취득으로 인정한다. 만약 미이수한 경우에는 보충학습 등으로 학업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고교 학점제는 이미 외국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워크숍 셋째 날 발표에 나선 이광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고교학점제지원센터장에 따르면 미국·캐나다·호주·필리핀 등에서는 고교 학점제가 일상이다. 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학업계획과 진로 코칭에 근거해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이는 대입에 고스란히 활용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마찬가지다. 두 국가의 차이는 국내 수능과 비슷한 위상인 SAT 등의 시험을 별도로 치러 이를 대입에 반영하느냐 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는 2025년 고1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2021년까지 기반을 마련, 2022년부터 전체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도입한 후 2025년부터 고교 학점제의 필수 전제인 ‘내신 성취평가제’를 도입, 본격적인 시행에 나선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105개 연구선도 학교를 선정, 고교학점제 적용에 따른 효과와 개선점 등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진행하고 있다. 교원·인프라 확보 등에 관한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다. 

■시행 여부 ‘아직은 불투명’…정치논리 배제될까 = 고교학점제는 과연 계획대로 2025년에 시행될 수 있을까. 교육계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입제도 변화 없이는 고교학점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에 집중하는 고교 학점제는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전제로 한다. 만약 고교 내신 평가를 현행처럼 상위 4%에 1등급을 주는 식의 상대평가로 유지한다면, 고교학점제는 본래 취지를 잃게 된다. 현재 수능에서 아랍어로 학생들이 쏠리고, 물리Ⅱ가 기피과목이 된 것처럼 진로·적성에 따른 과목선택이 아니라 점수를 따기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신 성취평가제는 곧장 대입 변화로 이어진다. 특히 현행 학생부교과전형의 위상이 큰 폭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관측이다. 현행 상대평가 체제에서조차 고교별 여건 차이 등으로 인해 수능최저라는 문턱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 학생부교과전형은 고교 내신 절대평가 시에는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제발표에 나선 전 서울대 입학본부장인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교수는 “학생 과목선택권을 확대하면 수시전형의 중점 평가요소가 교과 성취도와 교과목 이수형태로 바뀌게 된다”며 “국가 표준화 시험이 축소되며 학생부교과전형의 위상 변화도 동반될 것”이라고 향후 대입제도를 예측했다.

문제는 대입전형이 고교 학점제를 아직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 8월 나온 2022학년 대입 개편안은 수능전형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로·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을 강조하는 고교 학점제와 정해진 과목을 응시해 대입평가도구로 삼는 수능 확대는 상충되는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현 정부가 2017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2022년을 예고했지만, 지난해 8월 2022학년 대입 개편안 발표 과정에서 2025년으로 고교 학점제 전면 도입 시기를 늦춘 것도 이러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교 학점제는 대입전형 변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입전형을 현시점에서 바꾸기는 쉽지 않다. 2022학년 대입전형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 기조발표에 나선 박종훈 경남교육감도 “이미 발표된 2022학년 개편안을 바꾸자는 것은 혼란만 불러온다”며 17개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구성한 대입제도 개선 연구단은 “2025학년을 목표로 중장기 대입전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정된 고교 학점제 본격화 시기가 2025년이란 것도 우려를 사는 대목이다. 2022년 대선 결과에 따라 정치논리가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꾸준히 이어져오던 학생부위주전형 확대 정책이 뒤집히고, 다양한 고교 형태라며 권장되던 자사고 등이 폐지 압박을 받는 모습을 보면, 정권 교체에 따라 교육정책이 급변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자유학기제처럼 정권 교체에도 상관없이 명맥을 잇는 제도들이 있긴 하지만, 정치논리에 따라 고교 학점제가 휘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교학점제 도입 대학들은 어떻게 바라보나 = 이번 워크숍의 의미 중 하나는 대학이 과연 고교 학점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대학들은 고교 학점제를 긍정적으로 본다. 진로·적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발표에 나선 김경숙 건국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건국대가 실시한 합격자 종단연구를 바탕으로 전공적응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진로진학활동에 적극적일수록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고교 재학 당시 진로성숙도가 높은 학생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할 확률이 정시에 비해 높다는 점 등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진로활동의 중요성이 높다는 점은 고교 학점제의 밝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현시점에서 대학이 고교 학점제 도입에 따른 대입 변화를 논의하는 게 옳지 못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계획대로 2025년 고교학점제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입학한 학생들이 대입을 치르는 것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뒤인 2028년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다음해 입시 전형계획을 제출한 시점에서 정시를 확대하라는 급작스런 주문이 쏟아진 게 작년의 일이다. 불과 다음해 입시조차 이렇게 안정돼있지 않은데 10년 후를 어떻게 예상하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고교 학점제라는 제도를 미리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 2022년 전 고교에 도입된 이후여야만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을 수 있다. 지금부터 괜한 논의들로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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