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의 문화로 만나는 교육] 스토너 교수와 아름다운 은퇴
[주현재의 문화로 만나는 교육] 스토너 교수와 아름다운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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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교수
주현재 교수

1월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출발의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 2월이 되면 학교 교직원들은 벌써 끝의 의미를 상기하게 된다. 졸업식과 은퇴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 2월도 어김없이 졸업식은 열렸고, 졸업식 날을 며칠 앞뒤로 해서 원로 교수들의 은퇴식이 열렸다. 대학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이러한 예식은 대학차원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것일 테지만 이 예식의 주인공인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처음 맞는 이 순간이 낯설 것이다.

얼마 전 참석한 은퇴식 중 기억에 남는 한 은퇴식이 있다. 은퇴식의 주인공은 내가 속해있는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신 K교수로, 총장임기를 마친 후 본래 소속돼 있던 대학으로 돌아가 남은 3년간의 교수생활을 더 하신 후 퇴임을 맞게 됐다. 은퇴식을 마치고 참석자들은 수십 개의 둥그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식사를 했는데, K교수는 인사를 겸해서 내가 앉은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K교수는 31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본인이 무엇을 가르쳤을까 반성하게 된다며, 교수자로서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해서 학생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소회를 밝혔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왜냐하면 10여 권이 넘는 교재를 집필하고, 기획처장을 거쳐 총장을 역임한 리더십 강한 어른이 행정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교육자로서의 아쉬움에 대해서만 토로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근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교수의 삶을 조망한 소설 ‘스토너’다. 이 책의 작가인 존 윌리엄 역시 미국 미주리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다. ‘스토너’는 여러모로 신기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965년인데, 무려 50년간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판으로 다시 한 번 출간 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또 하나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줄거리에 드라마적인 요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TV드라마 등 영상 미디어에 익숙한 현대 독자로서는 느릿한 전개와 다소 평범한 사건들을 인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나는 역설적으로 그런 점이 이 책을 빛나게 하는 요소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윌리엄 스토너는 인생의 가장 큰 영향을 대학교육을 통해 받았고, 인생을 마칠 때까지 대부분의 삶을 대학과 함께 했다. 하지만 책 서두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교수로서의 행적은 일반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스토너의 동료 교수들 역시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스토너의 교육에 대한 신념에서 찾고 싶다. 그는 작은 농가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배우지 못했고 가난과 힘든 노동으로 인해 실제 나이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늙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스토너의 아버지가 어디선가 대학에서 농사를 효과적으로 짓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온 후 그를 대학에 보내 공부시키기로 결정한다. 힘들게 입학한 대학생활 초기, 스토너는 그리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대학 공부란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일종의 책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스토너는 기초교양 강의로 영문학 개론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수업은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민과 고뇌를 안겨주었고, 결과적으로 그 시간은 스토너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기회가 된다. 비로소 스토너는 문학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삶과 욕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특히 그 수업을 담당한 아처 슬론 교수는 다소 냉정한 성격이지만 면담을 통해 스토너에게 자기 성찰을 통한 비전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마침내 스토너는 농사꾼이 되라는 부모의 바람을 저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영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대학에 와서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스토너는 영문학 강사가 되고, 또 교수가 된다. 대학교육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벽히 바꾼 셈이다.

교수가 된 스토너는 자신이 경험한 대로, 교육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가르치는 일과 연구에 최대한 집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그의 태도가 그를 고독하게 만든다. 대학은 당시에도 수업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훌륭한 교수로 평가받기 어려웠던 것일까. 학생 몇몇과 연인 드리스콜을 제외하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순수성을 도무지 이해해주지 않는다. 스토너는 교수로서 거둔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교수가 감내해야 할 외로움과 쓸쓸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교육자로서 위대하다.

은퇴할 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머리에서 K교수의 은퇴식과 소설 스토너가 교차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교육자로서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감정을 느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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