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300여 명 소수정예…교수 1인당 학생 9명 ‘집중’ 교육
융합 프로젝트 기반으로 ‘이론’보다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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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center. (사진 = 올린공대 홈페이지)

한국대학은 위기다. 전 세계적 흐름인 4차 산업혁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학들에 변화를 강요한다. 우리나라는 특유 문제인 ‘학령인구감소’까지 여기에 더해진다. 당장 직면하게 될 신입생 유치에 대한 걱정부터 변화를 통한 미래 발전상 생각까지 대학들의 머리는 복잡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해외 대학들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녹여낼 수만 있다면 악조건 속에서도 발전은 성큼 다가온다. 한국대학신문이 우리 대학들이 참고해야 할 해외 대학 성공사례를 선정, 그들이 가진 노하우와 성공의 밑바탕이 된 변화상들을 소개한다. 선행사례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적용함으로써 세계 어디에 내놔도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하게 될 국내 대학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강의실은 시끄러운 작업장을 방불케 한다. 한쪽에서는 나무를 깎고 누군가는 코딩을 한다. 로봇을 조립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교수들은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할 뿐. 답은 학생들이 찾아내야 한다. 수업에서 나온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기업에 실제로 적용된다. 배우는 것이 아닌 ‘배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교육 철학이 담긴 대학의 풍경이다.

프로젝트 기반 교수법을 통해 공학교육의 혁신을 이룬 프랭클린더블유올린공과대학(Franklin W. Olin College of Engineering, 올린 공대)이 ‘대학 변신’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교의 니덤(Needham)에 있는 올린 공대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각광받는 미국 대학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미 미국 현지에서는 아이비리그와 어깨를 견주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야말로 ‘미래의 교육’을 현실로 가져왔다는 평이다.

프로젝트 기반 교수법을 통해 공학교육의 혁신을 이룬 올린공대가 ‘대학 변신’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 = 올린공대 홈페이지)
프로젝트 기반 교수법을 통해 공학교육의 혁신을 이룬 올린공대가 ‘대학 변신’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 = 올린공대 홈페이지)

■ 교수당 학생 수 9명 ‘밀착’ 교육…등록금 50% 이상 지원 = 엔지니어였던 프랭클린 W. 올린이 설립한 올린재단은 수십 년 동안 미국 유수 과학 대학들에 기부해오다 1997년 공대를 세웠다. 4년간의 준비 끝에 2002년 70여 명의 학생을 선발하며 정식으로 학교의 문을 열었다.

개교를 한 해 앞둔 2001년 교수를 채용하면서 30명의 학생들을 ‘올린 파트너’로 뽑았다. 교수진과 협력해 교과과정을 꾸리기 위해서다. 설립 초기 30명의 교수를 뽑는 데는 미국 전역에서 3000명이 지원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하버드대학 등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교수들도 다수 몰려왔다. 올린 공대의 ‘성공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학생 수준은 상위 1%로 꼽힌다. 하버드대학이나 MIT에 입학할 만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매년 치열한 경쟁을 거쳐 입학한다. 재학생 350명 규모로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은 무엇일까.

입학의 필수 조건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조화 능력을 갖췄냐는 것. 올린 공대는 매년 1차 합격한 210명 정도 학생들을 2차 관문인 ‘후보자 주말’에 초청한다. 2~3월에 이뤄지는 이 행사에서 학교 소개와 그룹 프로젝트, 토론, 인터뷰 등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한다. 1학년부터 그룹 프로젝트 위주로 이뤄지는 교육 과정 특성상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능력도 평가 요소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한 학생 전원은 4년 학비 반 이상을 장학금으로 받게 된다.

■ “경계가 사라진다” 융합교육 선도…프로젝트 기반 학습 실시 = 가장 큰 강점은 모든 수업이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론부터 가르치는 기존 공대 교육에서 탈피했다. 입학 후 처음부터 실험 위주 현장 중심 교육을 시행한다. 실용성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하면서 배우자’는 교육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학교가 ‘답’을 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고 아이디어를 모아 문제 해결점을 찾는다. 경쟁 대신 협력의 힘을 깨닫는 것이다.

기존 교육이 단순히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면 올린 공대는 사회를 돕기 위해 해법이 필요한 문제를 찾아내는 법을 가르친다.

학과는 나뉘져 있지 않다. 크게 △전자·컴퓨터 공학 △기계공학 △바이오·재료 공학 전공으로만 나뉜다. 그 안에서 융합 교육이 진행된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4차 산업교육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공학·과학·기업가·디자이너·수학·예술·인문학 등으로 이뤄진 교수진도 한 과에 묶여있어 여러 전공교수가 공동으로 가르치는 수업들이 많다.

교수에게 정년은 보장되지 않는다. 5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종신교수는 없다. 이는 5년마다 교육과정을 교체하며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 학생 못지않게 교수들도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를 하게 되는 이유다. 학생과 교수 비율이 9 대 1로 낮은 편이어서 학생중심의 깊이 있는 교육이 이뤄진다.

올린공대는 배우는 것이 아닌 배우는 '배우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깨우는 공부법을 하고 있다.
올린공대는 배우는 것이 아닌 배우는 '배우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깨우는 공부법을 하고 있다. (사진 = 올린공대 홈페이지)

■ 학생이 협업 기업 현장 문제점과 해결책 찾고 기업은 실제 적용 = 올린 공대만의 독특한 이 프로그램은 학교와 기업의 협업으로 운영된다. 학생 4~5명이 팀을 이뤄 여러 전공을 넘나드는 해결책을 도출해내며 현장 감각을 익힌다. 캡스톤디자인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문제 해법을 찾는 현장중심 연구를 실시한다.

학생들은 졸업반이 되면 스코프(SCOPE)라는 컨설팅 프로그램을 거친다. 스코프는 학생들이 실제 기업이 당면한 문제를 직접 발주 받아 그간 배운 모든 지식을 기반으로 직접 해결해 나가는 프로젝트다. 이때 교수의 도움은 받지 않는다.

지난 2015년도 프로젝트 중에는 △방산업체 레이시온의 새로운 전기 발진기 △로커스사의 인간의 개입을 극소화한 공업용 로봇 △보잉사의 737기 조립라인 이물질 제거를 돕는 자동 로봇 △아날로직사의 초음파 영상기기 △육군 연구소의 자동 착지에 필요한 영상채집기 등 14가지의 기계를 만들어내고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 해결책의 소유권은 스폰서 기업이 갖는다.

인근의 뱁슨칼리지(Babson College)와 웰즐리칼리지(Wellesley College) 등 우수한 대학과 학문 교류를 통해 공과대학으로서 부족한 인문학·자연과학·사회과학·예술 부문을 보완한다. 세 대학 간의 셔틀버스도 구비돼 있다.

올린공대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학으로 꼽힌다.
올린공대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학으로 꼽힌다. (사진 = 올린공대 홈페이지)

■ 개교 15년 만에 ‘美 25개 명문대학’에 = ‘프로젝트 기반 교과과정’이라는 새로운 대학 교육 모델을 구현한 올린 공대는 공학 교육 혁신 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미국의 학부 중심 4년제 대학 ‘올린 공대’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학으로 꼽힌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6년 ‘뉴스위크’가 미국의 25개 명문대학을 선정해 명명한 ‘뉴 아이비스(New Ivies)’ 그룹에 속했다. 학생들에게 전폭적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실험과 혁신’을 추구하는 교육을 한 결과다.

대학정보 전문 사이트인 칼리지팩추얼(College Factual)이이 선정한 매사추세츠주 톱10 대학 중 5위로 꼽혔다. 이밖에도 △미국 경제방송 CNBC가 뽑은 20개 가치 있는 대학(2019) △프린스턴 리뷰(Princeton Review)가 뽑은 미국 북동부지역 최고 대학(2018) △칼리지 팩추얼 뽑은 미국 최고대학(2018) 등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왕왕 조명된다. 학과 단위를 탈피한 융합형 전공 구조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데 적합한 교육 혁신 방안이라는 점에서다.

고등교육미래위원회 특성화분과 연구자인 채재은 가천대 교수는 지난 1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산업수요 변화에 따라 인력 수요 예측이 곤란해지는 상황에서 대학 특성화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올린 공대를 우수 사례로 꼽았다. 채 교수는 “올린 공대는 학과 단위를 벗어나 융합형의 유연한 전공 구조로 프로젝트에 기반한 교육과정을 꾸리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종전의 학과 중심 개념에서 탈피해 대학 운영·방법 등의 다면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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