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본지 논설위원/ 성균관대 학생처장, 학생성공센터장

베상훈 성균관대 학생처장·학생성공센터장
베상훈 성균관대 학생처장·학생성공센터장

1995년 역사적인 5·31 교육개혁 방안이 발표됐다. 교육개혁 종합플랜에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대학의 설립을 허가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포함됐다. 진입 장벽을 없애는 대신 시장이 살아남을 대학을 공정하게 가려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오늘날 구조개혁이란 이름으로 당면하고 있는 혹독한 시련과 경제적 관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국가적 혼란은 교육 영역에 시장 기제를 섣불리 도입한 대가일 것이다. 곧이어 우후죽순 생겨난 대학을 대상으로 옥석(玉石) 가리기가 시작됐다. 바로미터는 논문 수였다. 1999년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목표로 시작된 BK21 사업과 주요 대학 평가가 논문 수를 핵심 지표로 삼았고, 대학 사회는 논문 수 경쟁에 빠져들었다. 대학의 미션과 처한 여건을 고려할 때, 교육중심 방전 전략을 택해야 했던 대학들도 연구 경쟁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교수들이 가르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연구실과 실험실에 갇혀 논문 생산에 몰두하는 풍경이 캠퍼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사는 고등교육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발전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2010년 ACE 사업을 불린 학부교육 선도대학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대학의 학부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확대됐다. 대학 구성원들은 대학이 추구해야 할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잘 가르치는 대학도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됐다. 연구중심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연구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비록 1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지만, ACE 사업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바로 세우는 사업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5년 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필두로 우리나라 대학들은 피 말리는 생존 경쟁에 뛰어들었다. 넘치는 학생 덕분에 태평성대를 누렸던 대학들은 변하느냐, 죽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됐다. 학생감소와 재정절벽이 가시화되면서 경영진은 물론 일반 교수들 사이에서도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혁신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지가 중요하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때 속도보다 방향을 정하는 총력을 기울인다. 혁신하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 구성원이 공감할 때, 진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최근 주목받는 것이 학생 성공이다. 총장들의 취임사에 등장하고, 대학 비전과 중장기 발전계획에 포함한 대학도 많다. 필자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학생 성공 어젠다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전진 기지로 ‘학생성공센터’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학생 성공이 수사(修辭)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취업에 국한해서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성균관대 연구팀이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이 생각하는 성공 요소에는 높은 학점과 취업 외에 다양한 캠퍼스 활동과 경험, 깊은 인간관계, 꿈과 진로 설계,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가치관의 성숙이 포함됐다. 학생들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했고, 수업 외에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원했다. 지식 함양은 물론 내면적 성숙도 필요하다고 했다. 100세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학생들은 성공의 길이 무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학이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다.

학생 성공은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는 대학은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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