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원 숭실대 대학교육혁신원

오세원 숭실대 대학교육혁신원
오세원 숭실대 대학교육혁신원

대학의 2월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겨우내 움츠렸던 식물들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약간은 쌀쌀함이 느껴지는 바람조차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의 긴 터널을 지나온 신입생들이 분주히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에서 대학은 다시 활력을 찾는다.

이 무렵 캠퍼스는 예비대학에 참가한 발랄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희망찬 꿈’과 도서관에서 방학도 없이 불투명한 미래에 도전하는 학생들의 ‘끝없는 노력’이 묘하게 대비돼 투영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특히 최근 4~5년 동안 고등교육의 위기, 취업률의 하락, 대학 중도탈락률의 심화, 대학구조조정, 외국인 유학생 불법 체류율 증가 등을 지적하는 부정적인 단어들이 대학을 뒤덮고 있다. 최근 몇 주 사이에도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고, 별로 새롭지도 않은 다양한 대안들이 또다시 신문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학 총장들의 졸업 권설, 입학식 환영사에도 매년 유사한 내용들뿐이다.

그 사이 대학은 얼마나 변화했는지 자문해 본다. 문제를 인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전략을 세우고, 실천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추진해 온 것은 사실이나, 만족할 만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에는 의구심이 든다. 매년 똑같은 패턴의 보도 자료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분명, 기대에 못 미치는 듯하다.

문제는 무엇일까? ‘실행력의 부족’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철저한 계획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추진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꼼꼼히 점검해 추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전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인해 ‘실행’조차 하지 못하는, ‘실행’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혁신’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많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단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혁신’ 과제라고 말하는 것이 부적합한 사업이었을 것이다.

모듈식 조립 도구인 레고(LEGO)를 보면 답이 보인다. 작은 블록을 기본단위로 하는 레고는 요즘은 움직이는 스포츠카를 만들기도 하고, 공장을 만들기도 하며, 유럽의 고성(古城)을 만들 수 있는 간단치 않은 조립 도구다. 그러나 한 번에 이것을 다 구현하지는 못한다. 성벽을 만들고, 성을 만들고, 별채를 만들고, 성문을 만들고, 정원을 차근차근 만들어 이것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면 아름다운 성이 완성된다. 부분부분 작은 구조물들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성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이제는 길게는 근대 대학교육 체계가 도입된 이후, 짧게는 교직원이 학창시절 경험했던 아련한 추억에 갇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실천 가능한 영역부터 ‘닥치고 실행’하는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이것이 두려워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고,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1년이 지난 2020년 2월에 또다시, ‘위기’와 ‘혁신’을 외치는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완벽한 분석과 화려만 계획보다는 ‘닥치고 실행’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