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예비번호에 '원칙 무너진' 이중등록까지
지원자 전원 부여하는 고려대·연세대 '모범 사례'
이중등록 문제 해결책 전무, 추합 시스템 전반 손봐야

(사진=한국대학신문DB)
추가합격 제도는 수험생들의 명운을 뒤흔드는 제도이지만,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 대학마다 기준없이 부여하는 예비번호부터 시작해 원칙이 무너진 이중등록 제도까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2019학년 정시모집 미등록충원합격(추가합격, 이하 추합) 기간은 어느 해보다도 시끌벅적했다. 연세대에서는 지연이체 제도로 인해 등록금 납부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끝내 불합격 처리된 안타까운 사례가 나왔다. 서울시립대에서는 마감시간에 임박해 전화로 합격 사실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 논의 끝에 가까스로 구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두 사안 모두 흔치 않은 사례라는 점에서 추합 기간을 들썩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전체 수험생 규모를 생각하면 저러한 사례들은 항상 나올 수 있다. 개선할 방법들도 충분하다. 연세대는 지연이체 제도에 대한 주의문구를 모집요강 등에 수록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울시립대의 사례는 마감시간에 임박해 전화로 통보하는 것을 피하기만 하면 해결 가능한 일이다.

그보다는 추합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뭔지 살피고 개선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추합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문제점으로는 △예비번호 부여 범위 △이중등록이 존재한다. 예비번호는 대학마다 제각각인 기준이 개선되고 있지 않은 탓에 수험생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며, 이중등록은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고 악용할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제도 자체를 원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수험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추합에서 불필요한 논란과 시간 소모 등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다 정밀한 대입제도 운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수험생 ‘답답함’ 원흉, ‘제멋대로’ 예비번호…‘입결’ 참고했다 하지만 = 현재 대입에서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모두 추합이 실시되고 있다. 수시의 경우 6회, 정시의 경우 3회 등 복수의 원서를 접수할 수 있다 보니 벌어지는 중복합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통상 추합은 최초합격자 외 수험생들이 ‘예비번호’를 받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후 홈페이지 발표나 전화 통보 등을 통해 합격 사실을 인지한 후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주어지는 ‘예비번호’의 기준은 없다. 대학들은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에서도 제각기 다른 범위의 예비번호를 부여한다.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예비번호 부여 범위에 대한 결정은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다.

그렇다보니 대학마다 예비번호를 주는 범위는 제각각이다. 서울대의 경우 수시·정시 모두 일체 예비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고려대와 연세대는 수시에서는 1배수, 정시에서는 모든 지원자에게 예비번호를 준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정시모집 기준 성균관대는 0.3배수, 이화여대는 0.5배수, 서강대와 한국외대는 1배수, 경희대는 2배수의 예비번호를 준다. 서울시립대는 모집단위에 따라 2배수에서 4배수의 예비번호를 부여하고 있으며, 중앙대와 한양대는 모집군에 따라 예비번호를 달리 주고 있다. 한양대는 가군 1배수와 나군 0.5배수, 중앙대는 가·나군의 경우 0.3배수, 다군의 경우 간호는 2배수, 간호 외 모집단위는 5배수까지 예비번호가 나온다.

여기서 1배수는 모집인원과 동일한 예비번호를 줬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0명을 모집하는 학과에서는 1등부터 10등까지의 지원자가 최초합격하면, 11등부터 20등까지의 인원들에게 1번부터 10번까지의 예비번호를 주는 것이다. 0.3배수면 11등부터 13등까지만 예비번호를 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제각각인 예비번호로 인해 수험생들이 자신의 추합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모든 지원자에게 예비번호를 주는 고려대·연세대는 별 문제가 없지만, 나머지 대학에서는 예비번호를 받지 못했는데도 추합하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그나마 중앙대·한양대·한국외대는 예비번호를 계속해서 추가 부여하기에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다. 선순위자가 추합하는 경우 기존에 예비번호를 받지 못했던 수험생에게 추가로 예비번호를 주기 때문에 수험생 스스로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다. 하지만, 경희대·서강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 등은 처음 준 예비번호 외에는 일체 추가 번호를 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예비번호 밖 순번인 수험생들은 일체 합격 가능성을 알기 어렵다. 

왜 수험생들에게 답답함을 주면서까지 대학들은 제각각인 기준을 고수할까. 서울대는 최초합격과 추가합격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는 등 교육적 견지에서 예비번호를 일체 주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높은 선호도로 인해 추합 인원이 타 대학 대비 상당히 적다는 점도 예비번호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이외 대학들의 해명은 나름의 기준을 두고, 예년의 입시결과를 참고해 예비번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예비번호 범위는 전년도 추합 결과를 참고해 정한다. 실제 합격 가능성이 없는 수험생들에게까지 과도하게 예비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실제 부여된 예비번호보다 더 많은 추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0.3배수의 예비번호를 부여한 성균관대의 경우 가군에서는 1.9배수, 나군에서는 0.5배수가 넘는 추합이 발생했다. 

다른 대학들은 대부분 부여한 예비번호 범위 내에서 추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개별 모집단위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1배수의 예비번호를 부여한 서강대의 경우 평균 추합 비율은 그보다 낮았지만, 사회과학부 경영학부 전자공학전공 등에서는 1배수 이상의 추합이 발생했다. 예비번호를 받지 못했던 수험생들까지 추합 명단에 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추합으로 인해 당혹감을 느낀다는 수험생들의 증언은 매년 나오고 있다. 고교 현장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한 고교 진학부장은 “가장 선호도 높은 고려대와 연세대마저 모든 지원자의 예비번호를 공개하고 있는데, 그보다 선호도 낮은 대학들이 일부 번호만 주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원자가 응당 알아야 할 ‘등수’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대입 운영이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고려대와 연세대처럼 지원자 전원에게 예비번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수험생이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게 되면 추합에 대해 대비하게 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대학들이 여전히 예비번호 부여범위를 넓히는 데 소극적인 것은 결국 ‘서열’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의 관측이다. 한 입시기관 관계자는 “예비번호를 전부 부여하면, 이를 통해 대학별 선호도의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대학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워낙 공고하기에 이러한 우려가 적지만, 다른 주요대학들은 경쟁상대인 대학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고, 때문에 예비번호를 최대한 적게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원칙 무너진’ 이중등록…'악용' 가능성도 = 추합이 지닌 문제점은 제멋대로인 예비번호 부여범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후약방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중등록도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추합 사실을 인지한 수험생은 두 경우 중 하나에 놓이게 된다. 모두 이미 어느 대학에 합격해있는 경우거나 아직 합격한 대학이 없는 경우다. 이 중 문제는 이미 대학에 합격해 있을 때 벌어진다.

본래 추합 사실을 인지한 수험생은 기존에 등록해 놓은 대학을 포기하고, 추합한 대학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만약 시간적 문제로 기존 합격 대학에 대한 등록포기가 어렵다면, 등록포기 의사라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는 대교협이 발표하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에도 명시돼있는 사항이다. 

다만, 원칙과 현실은 다르다. 기존 합격 대학에 등록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추합한 대학에 등록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는 원칙적으로 두 대학에 동시 등록해 있는 ‘이중등록’에 해당한다. 이 경우 대교협은 개별 대학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이중등록 금지 위반자 명단을 통보하도록 돼 있으며, 대학은 해당 인원의 입학을 지체없이 무효 처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원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두 대학 등록을 추합 종료 시점까지 유지하더라도 실제 제재로 이어진 적은 없다. 추합기간 동안 대학들은 대교협이 운영하는 대입지원 위반자 사전방지 시스템에 추합 여부를 알리고, 이를 통해 이중등록 여부가 판명나지만 “이중등록 상태를 해소하라”는 지침이 내려지는 것이 전부다. 대학들은 수험생에게 연락해 “한 대학의 등록을 포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추합기간이 전부 종료된 후에도 두 대학에 등록한 상태를 이어나가고 있다면 제재 가능하지만, 그 때 가서 한 대학 등록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이중등록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다보니 ‘악용’ 가능성은 항상 내포돼있다. ‘어차피 내가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심산에서 두 대학의 등록을 계속해서 유지하다 추합기간이 끝난 이후에야 한 대학의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실제로도 종종 나온다. 한 수험생의 추합 기회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행위지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특히 수험생이 이중등록을 잘 몰랐다며 ‘단순실수’라고 항변하거나, ‘신중한 결정’을 위해 장고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명하면 제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이처럼 이중등록 규정을 악용하는 수험생들을 '악당'을 뜻하는 '빌런'으로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학들은 이러한 악용 사례나 규정 미인지로 인한 결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등록포기 기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만약 등록을 포기하려거든 일정 시점까지 등록을 포기해야 한다고 모집요강에 규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등록포기 기한은 실제 아무런 효력이 없다. 수험생이 이를 무시하고 정해진 시점을 한참 넘겨 등록포기를 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대학의 결원으로 이어지며, 실제로는 추합했어야 할 수험생의 기회를 뺏는 일이 된다. 

비교적 해결책이 단순한 예비번호와 달리 이중등록은 현재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사전방지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만들더라도 이중등록 상태를 수험생이 계속 유지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다. 원칙을 명확히 해 강력 제재에 나서는 것도 대학진학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이중등록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추합 시스템 전반에 손을 대야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 관계자는 “매년 뒤늦은 합격 포기자와 이중등록 상태를 유지하는 수험생들로 인해 실제로는 합격권인 학생들이 기회를 놓치고, 대학은 결원을 떠안는 문제가 발생한다. 주먹구구식인 추합 시스템 전반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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