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산업이다.” 교육부총리 인사파동 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통령의 발언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대학교에 우리 경제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대학교육에 대해서 우리 경제와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주문서를 정확하게 내고ㆍㆍㆍ”라는 말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학은 산업에 필요한 일꾼을 양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그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경제계의 필요나 요구에 따라 대학을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인 듯하다. 이대로라면 대학교육이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이란 단일 잣대로 재단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재계나 경제 관련 부처의 대학정책에 대한 개입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미 교육부총리가 주재해온 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국가인적자원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 등의 수요자 중심에서 인적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며칠 전 산업계 중심의 인적자원개발협의체가 출범한 것을 보면, 바야흐로 인력 양성과 수급 문제가 대학개혁의‘화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고용가능성이나 경쟁과 효율성 등과 같은 가치에 대한 배타적인 강조가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오히려 비(반)교육적 행태가 조장될 공산이 크다. 노동시장의 변덕스런 요구에 휘둘려 대학이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예상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는 대학설립준칙주의 등 경제논리를 앞세워 추진해온 ‘개혁’을 포기하면서도 전혀 반성의 기색이 없는 정책 당국의 모습에서 확인되는 바이다. 그러면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회의적이다.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대학정책에서 ‘고용가능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의 타당성을 뒷받침해주는 듯하다. 물론 분야에 따라서는 얼마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일종의 ‘교육만능주의’로 문제 상황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장애가 될 뿐이다. 노동시장의 특성이나 ‘고용 없는 성장’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요인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의 문제를 대학에 떠넘기는 식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발상에서 출발한 실험이 성공할 리가 있겠는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는 대학에서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꼭 들어맞는 말이다. 지식기반사회일수록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고용가능성 대신 “문제해결적 직업능력”(trans-employabilti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인력양성에 관한 한, 급변하는 노동시장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대학 본연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대학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지식교육과 인간교육”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경제논리의 범람으로 수급 불균형과 질적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