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합격한 뒤에도 노량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지역 종사자 “산업구조 공시생 의존도 너무 높아…지역침체 원인”
‘전국 최초’ 직업교육특구 지정 동작구 “노량진을 청년 내일 베이스캠프로 만들 것”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 거리는 수험생들로 보이는 인파로 거리가 항상 꽉차 있었다. (사진=김의진 기자)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 거리는 수험생들로 보이는 인파로 거리가 항상 꽉차 있었다. (사진=김의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4일 오후 2시께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를 찾았다.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를 들어서기도 전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들, 공부가방을 메고 이제 막 산 것 같은 수험서를 든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들로 온 거리가 꽉 찰 지경이었다.

잠깐 학원에서 나와 군것질을 하는 듯 허겁지겁 포장마차 간식거리를 먹는 학생부터, 수업이 끝나고 자습을 위해 독서실로 향하는 학생들까지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는 한시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니던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경찰시험을 준비한다는 한 공시생은 “하루라도 빨리 노량진을 뜨고 싶다”며 “지방 출신이라 좁은 고시원에서 사는데, 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합격한다면 그래도 노량진에서의 경험이 추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량진은 학원들이 있으니까 할 수없이 선택했던 곳이지, 이곳에서의 추억은 전혀 없을 것 같아요. 만약 합격해서 기분이 좋다가도 노량진을 생각하면 이곳에서의 우울했던 기억 때문에 기분이 다시 안 좋아질 것 같습니다. 노량진은 그냥 제 인생에 선택권이 없어 거쳐간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노량진에서는 수험생들이 생활하는 고시원, 고시텔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진=김의진 기자)
노량진에서는 수험생들이 생활하는 고시원, 고시텔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진=김의진 기자)

동작구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지역산업 종사자들의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량진동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공무원시험 시설에 특화돼 있다는 점이 지역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며 “노량진을 찾는 수험생이 5만 명쯤 된다고 하는데 이들은 지역에 정착할 인구가 아니다. 경제활동 면에서 장기성을 가지지 않는다. 동시에 산업도 ‘수험생 밀착’ 산업이 대다수라 계층이 다양하지 않아, 지역경제 발전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개막되며 많은 일자리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연일 터져나오지만 여전히 공무원이 꿈인 나라. 취업준비생 10명 가운데 4명이 공시생인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자, 서울 동작구의 민낯을 들여다본 순간이다.

■‘노량진=공무원시험’…억울한 이름표 뗄까 = 사실 노량진이 위치한 서울 동작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지역이 공무원시험 중심의 사설학원사업에 이른바 ‘올인’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금융의 중심 여의도에 맞닿아 있으면서 전자상가 등 IT산업과 교통이 특화된 용산구와도 밀접하게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남 4구 등 광역거점을 선으로 이어봐도 동작구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동작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줄 계기가 최근 마련됐다. 동작구가 지난 1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지역특화발전특구위원회에서 전국 최초 ‘직업교육특구’로 지정된 것이다. 앞으로 동작구 노량진동 일대에 4년간 총 380억원이 투입돼 ‘내일(My Job)이 있는 직업교육도시 동작’ 사업이 추진된다.

특히 앞서 노량진 공시생의 말처럼 되는 일이 없도록 청년층에 특화된 여러 사업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더 이상 노량진이 ‘악몽의 땅’이 되지 않고,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게 청년층 일자리과제를 선도하겠다는 동작구의 각오다.

유재천 동작구청 일자리정책과장은 “노량진 공시생이 ‘고시낭인’이 되지 않도록 진로전환을 장려하는 동시에 정부 과제에 부응한 ‘일자리창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것”이라며 “중앙대와 숭실대 등을 활용한 창업 클러스터 조성사업, 동작경찰서 부지 SW산업단지 조성 등을 병행 추진해 동작구를 ‘직업교육의 신(新)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정환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도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정환 의원은 “직업교육특구 지정을 환영한다”며 “노량진 지역이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꿈의 산실이 되길 바란다. 지속가능한 고용촉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교육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관한 동작구 청년창업지원센터의 모습. (사진=동작구)
최근 개관한 동작구 청년창업지원센터의 모습. (사진=동작구)

말로만 그치는 계획이 아니라 실행에도 본격적인 속도가 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청년창업지원센터’가 개관하며 운영에 들어간다. 우수한 창업인재를 발굴·양성하기 위해 센터 설치를 추진했던 동작구가 이날 센터를 개관하며 성장단계 창업기업 4곳과 예비 창업자 10명 모집 등 운영 준비를 모두 마친 것이다.

청년창업지원센터는 창업자가 실제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무실 △코워킹 스페이스 △회의실 등으로 조성됐다. 청년 창업기업 전용 사무공간으로서 4개의 사무실이 꾸려졌으며, 창업자 간 정보 공유와 사무를 볼 수 있는 10개 좌석이 설치된 코워킹 스페이스, 입주기업 간 컨설팅을 지원하는 회의실이 마련됐다.

청년창업지원센터에는 창업보육 전담인력이 배치된다. 창업주기별 맞춤형 보육 프로그램과 경영관리, 전문 컨설팅 등 청년층의 창업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전문대=0’ 동작구, 또 일반대만의 잔치?…“절대 그럴 일 없다” = 동작구의 직업교육특구 지정은 전문대학 사회에서도 반길 일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 바로 전문대학이기 때문이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은 있다. 정작 동작구에는 전문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중앙대와 숭실대, 총신대 등 일반대 3개교만이 동작구에 있다. 동작구 추진사업이라는 이유로, 또는 수많은 정책 사례들을 경험했듯 전문대학이 과연 차별 없이 일반대와 대등한 위치에서 사업 참여를 할 수 있을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동작구는 이러한 의심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확실한 역할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교육기관이며, 구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협업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일반대학이 연구중심이라면 전문대학은 기술과 직업실무를 중점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동작 직업교육특구의 추진방향과 일맥상통한다”며 오히려 전문대학이 더 많은 일을 동작구와 함께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와 동작구 간 협약 체결도 완료했다. 이 청장은 “전문대학의 협의체인 고등직업교육학회와 MOU 체결은 특구의 마중물”이라며 “학회와 함께 직업교육 혁신을 위한 여러 토론회, 세미나 등을 개최해 미래의 큰 그림을 논의하는 담론의 장을 구성해 뜻을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작 직업교육특구는 이제까지 정체돼 있던 동작구의 변화의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원동력에는 동작구와 지역산업, 대학이라는 구·산·학의 생태계적 연결고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 노량진을 떠올리면 공시촌이 아닌, 청년들이 꿈을 키우는 희망의 장소가 그려지는 ‘대한민국 청년 베이스캠프’로 변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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