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왼쪽부터 주현재 센터장, 박주희 처장, 허은영 주임, 김예진 센터장, 장민수 직원이 저녁 늦게까지 혁신지원사업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허지은 기자)
2월 26일 왼쪽부터 주현재 센터장, 박주희 처장, 허은영 주임, 김예진 센터장, 장민수 직원이 저녁 늦게까지 혁신지원사업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허지은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요즘 대학가는 혁신지원사업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자율협약형은 5일까지, 역량강화형은 12일까지 사업계획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2월 26일 저녁 7시가 넘어 삼육보건대학교를 찾았다. 대학들이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아보겠다고 삼육보건대학교 기획처장인 박주희 교수에게 연락을 하니 “6시부터 모여서 저녁 간단히 먹고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으니까 저녁 편한 시간에 오시라”는 답이 왔다. 개강 준비와 함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려니 6시 이후 철야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학교에 들어섰다. 복도는 어두컴컴했고 기획처나 교무처, 그 외 몇몇 회의실에는 불이 들어와 있다. 기획처에 들러 직원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 허은영 주임의 안내를 받아 어둑한 복도를 조금 더 걸어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TFT가 마련된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저녁은 드셨어요?”

박주희 처장과 김예진 대학성과관리센터장, 장민수 기획처 직원이 작업하던 것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기자를 반겼다. 인사는 끼니를 챙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급히 식사를 했는지 도시락 집에서 나눠준 물티슈와 생수가 테이블 한쪽에 놓여있었다. 이내 회의가 이어졌다.

“자율 지표를 몇 개 넣을까요? 이 지표는 빼고 다른 지표를 넣을까요?” “선생님, 이 지표는 자료에 있는 다른 폼(form)을 찾아서 자료를 만들어주세요.” “이 표현을 보고 평가자들이 우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른 표현이 낫지 않을까요? 우리가 제시한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지 걱정이네요.”

지표의 의미부터 각종 사업 관련 프로그램의 명칭까지 논의할 대상이 산처럼 쌓여있다. 혁신지원사업의 핵심은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이다. 중장기발전계획과 사업 계획의 연계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역량진단 후 자체진단보고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조사결과도 참고해야 한다. 향후 연차평가보고서, 종합평가보고서를 염두에 둬야 함은 물론이다. 삼육보건대학교는 자율개선대학이라 2019년 사업비도 이미 가배정된 상태지만 마치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준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물론 역량진단처럼 합불이 갈리진 않지만, 연차평가를 미리 대비하는 거죠. 사업계획서를 잘 써야 나중에 연차평가 보고서도 잘 쓸 수 있거든요.”

장민수씨의 한마디에서 책임감이 느껴진다. 국고 사업이나 대학 평가가 있을 때마다 TF에 참여했던 장씨는 삼육보건대학교에서 평가 준비의 베테랑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TF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교직원은 평가 업무하면 제일 먼저 담당자로 지목되는 ‘어벤저스’다.

“여기(TFT 소회의실) 말고 많은 교수님들, 직원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업계획서의 맡은 부분을 작업하고 있어요. 혁신지원사업 말고도 다른 국고 사업 평가와 간호인증도 진행되고 있어서 해당 TFT도 동시에 돌아가고 있고요. 우리 대학 교수님들은 평가에 총동원돼 있는 상황이죠. 직원들은 낮에 신입생을 맞이하고, 교수들은 수업 준비를 하다가 저녁에는 보고서 작성에 매진하고 있어요. 대학이 사업계획서를 쓰느라 밤낮없이 돌아가요.”

박 처장이 이렇게 설명하자, TFT실 바로 옆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교육 관련 항목 사업계획서 작업을 하다가 회의를 하러 소회의실을 찾은 주현재 센터장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을 꺼내며 답답한 심정을 돌려 말했다. 김예진 센터장도 한마디 거든다.

“우리가 교육자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교육에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이런 기타 업무에 에너지를 빼앗기니까요. 요즘은 매일 페이퍼만 써요.”

마침 허 주임 휴대폰이 울린다. 수화기 너머로 “아빠, 언제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박 처장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 시계를 보니 9시가 훌쩍 넘었다. 귀가를 재촉하는 전화에 박주희 처장은 “오늘도 늦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날 작업도 12시가 다 돼 끝이 났다.

이런 상황은 삼육보건대학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날 아주자동차대학 기획처에서 일하는 김태형 과장에게 “준비는 잘 돼가냐”고 연락을 하니,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하는 교직원은 강의 준비, 개강 준비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계획서와 씨름하고 있다. 계획서와 씨름하는 교직원을 학생들과 학부모가 보면 등록금 돌려달라고 할 것 같다”라는 답이 왔다. 역시 ‘저녁이 있는 삶’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27일에는 인천재능대학교를 찾았다. 이날 인천재능대학교는 신입생 OT가 겹쳐 오후 중으로 TF 모임을 정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6시 이후에 모임 시간을 잡았단다. 우선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기획처에서 잠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하는 한 교수의 통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예, 오늘 예약한 환자인데요. 일이 생겨서 예약시간을 못 맞출 것 같습니다. 네, 오늘은 일이 있어 못 갑니다.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 ‘일’이 사업계획서 준비를 이르는 것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김윤경 기획처 계장과 김용식 사무처 계장, 장준희 교학처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이 세 사람은 ‘재능대의 등대’라고도 불린단다. 장준희씨는 “우리가 불을 꺼야 다 퇴근한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겨울방학에 임용, 승진 평가 등이 몰려있어 가장 바빠요. 거기에 사업 평가까지 맞물려 있으면 정말 죽는 거죠. 한 달 동안 12시 전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어요.”

장씨의 말에 김윤경 계장도 말을 보탰다. 인천재능대학교에서 일한 지 7년 차인 김 계장은 교육역량강화사업부터 시작해 국고지원 사업, 평가 업무를 맡았다. 철야 작업도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윤경 계장은 “철야 근무를 하고 아침 5시에 집에 도착해 대충 씻고 다시 출근한 날도 있었다”고 답한다.

“교수님들도 농담 삼아 ‘애들이 보고싶다’고 하세요.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업무가 있으신데 평가 준비를 하려니 더 바쁘셔서 가족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으신 탓이죠.”

이야기를 하는 김 계장의 눈도 발갛게 부어있다.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도 과로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무엇일까. 김용식 계장과 김윤경 계장은 다음의 말로 짧은 인터뷰를 끝맺었다.

“등록금을 10년째 동결했잖아요. 대학 운영에 국고 지원이 필수적인 상황이죠. 이 때문에 전문대학의 숙명이 국고 사업을 따내는 일이 됐어요.”

“국고 사업을 못 따내면 그만큼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생겨요. 그러니 학생들을 생각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대학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죠. 하지만 이런 경쟁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삼육보건대학교 혁신지원사업 TFT 입구. 26일 사업계획서 작성 업무는 자정이 돼서야 마무리 됐다.
삼육보건대학교 혁신지원사업 TFT 입구. 26일 사업계획서 작성 업무는 자정이 돼서야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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