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 주연의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이란 영화가 있다. 세바스찬 융거의 실화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거대한 폭풍의 위력을 실감나게 표현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졸이게 한 스릴러 영화다.

원래 퍼펙트스톰은 열대저기압인 허리케인에 또 다른 두 개의 기상전선이 합해져 만들어진 초특급 열대성 폭풍을 뜻하는데, 모든 것을 한순간에 초토화시키고 쓸어버리는 특징으로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사회현상을 일컬을 때 자주 인용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008년 닥쳐올 세계경제 위기를 퍼펙트스톰 개념을 이용해 설명했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예측이 맞으면서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대학가에 밀어닥칠 위기 요인을 퍼펙트스톰으로 설명하는 이가 늘고 있다. 대학가에 밀어닥칠 퍼펙트스톰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 세력이 강해져 우리나라 대학교육 생태계에 엄청난 상흔을 입힐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대학가에 밀어닥칠 퍼펙트스톰의 정체는 무엇인가? 먼저 ‘학령인구 감소’를 꼽을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에 심각한 정원미달을 초래할 것이다. 이미 2018년 대입정원이 고교졸업자를 추월했다. 학생부족 현상은 고교졸업자가 대폭 감소되는 2021학년도 입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대학들이 학령인구 감소의 폭풍우에 버티지 못하고 쓸려갈 것이다. 그나마 버티는 대학도 교육여건이 급속히 악화돼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제2열대성 폭풍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다. 초연결, 초지능, 초스피드로 통칭되는 4차 산업혁명은 수천년간 유지돼온 대학의 형태와 기능에 큰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미 지금과 같은 오프라인 형태의 대학은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미네르바 대학같이 캠퍼스 없는 대학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될 것이고 학위, 학점 위주의 대학 시스템도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와 같은 새로운 인정체계로 대체될 것이다. 미래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대학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은 도태되는 것이다.

제3의 기상전선은 ‘글로벌화의 진전’이다. 교육의 글로벌화 현상은 경직된 교육체제하에서 규제에 얽매여 있는 국내대학들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이제 대학은 국내 대학 간의 경쟁이 아니라 외국 유수의 대학들과의 경쟁에 노출될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대학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교육의 질이 수요자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지금보다 편하고 빠르게 외국대학과의 접촉면을 늘려갈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이 질 좋은 콘텐츠를 저렴하게 제공함으로써 한정된 국내 입학자원을 분점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나마 좁아진 대학시장에 외국대학이라는 신흥 강자가 등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퍼펙트스톰의 위력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쓸어버린다는 데 있다. 영화에서도 선장을 비롯한 모든 선원이 퍼펙트스톰과 사투를 벌였지만 모두 절멸했다. 교육계에 밀어닥칠 퍼펙트스톰도 체력 약한 대학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대학은 퍼펙트스톰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의 아픔을 견뎌야 하며 구성원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규제 위주의 정부정책도 진흥 위주로 바꿔야 한다. 재정규제정책도 철폐해야 하고 혁신에 필요한 법과 제도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칫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나라 대학 생태계는 퍼펙트스톰의 격랑 속에 묻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규제의 사슬을 풀고 대학들이 자유롭게 세계의 유수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지금 교육정책 당국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