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한덕 센터장 순직으로 불거진 응급구조사 역할 논란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순직으로 인해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법률상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지나치게 한정적인 탓에 교육 현장에도 애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월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응급의료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범위 개정 공청회’가 진행됐다. 설 연휴였던 1월 4일 근무 중에 윤한덕 센터장이 사망하고, 그가 생전 응급구조사의 역할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알려지며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된 것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박시은 동강대학교 응급구조과 교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시행규칙으로 일임하고 응급구조사의 업무에 대한 법을 개정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를 설명하며 “복합적 업무를 수행하는 현실 의료 환경에서 응급의료 및 응급처치에 긍정적으로 종사하던 인력들이 위축됐다”며 “응급의료 선진국의 모델을 따르던 교육 현장에도 혼란이 일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정해져 있다. 1급 응급구조사는 기도 삽관, 정맥로 확보 등 14개 항목에 대한 처치를 할 수 있으나 채혈은 불가하다. 심정지 환자에게 에피네프린 등 응급약물을 쓸 수 없다. 또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이뤄지도록 돼 있다. 이에 긴급한 대응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 업무범위의 한계로 인해 응급구조사들이 정작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필수적인 응급처치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학에서 응급구조사를 양성하는 교육자들은 응급구조사의 양성 목적에 맞게 교육이 진행돼야 하지만 업무범위의 한계로 교육 역시 인력 양성 목적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부작용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응급구조사는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며 응급현장에서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됨에 따라 그 제도가 활성화되고 인력을 양성하게 됐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개정 TFT 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준동 공주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응급구조사는 커리큘럼 자체가 응급처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응급구조사 인력 양성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응급구조사 업무범위가 14개로 한정돼 있어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응급구조사가 간호조무사와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대학도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로 인해 일부 응급구조 관련 학과에서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게 하기도 한다. 취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응급구조사가 업무범위에 갇히게 돼 일어난 ‘교육의 왜곡’이라고 표현했다.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은 현장실습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정은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과 교수(한국응급구조학회 고문)는 “응급구조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현장실습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보니 병원에서 응급구조과 학생들을 잘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배치가 어렵다는 것”이라며 “응급처치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업무 범위가 협소해 실습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문대학 응급구조과에 재학 중인 A씨는 “현장실습 중에도 간호사와 경계 없이 업무를 봤지만, 간호사에게 무시를 많이 받았다. 간호사는 대부분의 처치를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응급구조사는 간호사의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어서다. 이런 내용을 알고 응급구조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현장과 법률 간 간극으로 문제가 발생하자 응급구조(학)과 재학생이 직접 업무범위 개선에 대한 국민 청원을 올린 일도 있었다. 2017년 11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개선에 대해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는 자신을 ‘응급구조(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소개한 글쓴이가 “지난 17년간 변화가 없는 업무범위가 실제 응급현장에서 귀중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얼마나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조사를 해주시고 그에 알맞게 변경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또 그는 청원 글에서 “응급구조사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응급환자에 대해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응급의료종사자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실시하는 1급 또는 2급 자격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라며 “1급 응급구조사의 경우 3년, 4년간 각 교육과정을 통해 시험 응시자격을 득하고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의 국가시험을 치르고, 합격 후 자격을 득해야 한다. 각 교육과정 동안 우리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은 기초의학, 응급환자관리, 전문응급처치학 총·각론, 응급의료법령 등을 수학하고 그에 대해서 국가시험을 치른다”며 응급구조사의 자격기준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안전성을 이유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 안전성을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비의료인인 응급구조사의 처치에 대한 안전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이 때문에 응급구조사 양성의 질 관리를 위한 방안과 이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사업, 시범사업을 통한 점진적 추진 등의 대안이 있다”면서 “현행 법률상 응급구조사가 응급처치를 못 해서 일어나는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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