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시행 예정···대학노조, 폐기 촉구
구조조정정책 방향 ‘대학 설립정신 실현과 교육역량 강화’ 초점 주문

[한국대학신문 정성민 기자] 대학구조조정정책(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시행 →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시행 →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시행 예정)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경기인천강원지역본부(이하 대학노조)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폐기를 촉구한 것. 특히 대학노조는 총파업까지 예고하며 교육부를 압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의견 수렴을 통해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대학구조조정정책 방향이 ‘대학 설립정신 실현과 교육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 대학노조,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폐기 촉구···총장 단체, 교수 단체 ‘공감’ = 대학노조는 11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교육부는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즉각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김동욱 대학노조 경기인천강원지역본부장, 박용기 대학노조 대전충청지역본부장, 백선기 대학노조 위원장 등 대학노조 조합원 40여명이 참석했다.

김동욱 본부장은 “박근혜 정권이 대학 통제 수단이자 재정을 빌미로 대학을 길들이기 위해 시행한 대학구조조정정책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면서 “지난 1, 2주기 평가를 진행하며 문제점이 확실히 드러났고 실효성도 없음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구조조정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교육 철학이 부재한 관료적 행태이며 탁상행정의 정형”이라고 비판했다.

박용기 본부장은 “대학구조조정정책이 대학 교육, 특히 지방대를 망치고 있다”며 “평가로 인해 학문이 죽어가고, 교수는 평가보고서 작성에 동원되고, 교직원은 기본업무에 평가사업까지 노동강도가 심하며, 학생들은 충원율과 취업률 지표로 전락했다. 교육개혁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선기 위원장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폐기를 위해 서명 운동, 1인 시위 나아가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백 위원장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 저지 10만 서명운동과 교육부 1인 시위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하반기 총파업에서 원칙 없는 대학구조조정정책 폐지와 대학 공공성 확보를 위해 투쟁할 것을 선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노조가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폈지만 총장 단체와 교수 단체들도 대학구조조정정책 문제점에 공감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시행에 앞서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평가를 통해 절반이 넘는 대학을 불량 대학으로 낙인을 찍고, 대학 간 갈등을 유도하는 방식은 대학 사회 황폐화를 예고한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8일 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 2층 강당에서 ‘갈림길에 선 문재인 정부의 대학진단: 대학혁신의 새 길을 열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대학구조조정정책 개선방향을 모색했다.

■ 정부 주도 정원 감축, 대학 발전 ‘걸림돌’ = 교육부는 2000년대 이후 대학구조조정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대학구조개혁추진계획을 발표했다. 2023학년도까지 3주기로 나눠 대학 정원 16만 명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2015년 실시됐다. 교육부는 전체 대학을 A등급부터 E등급까지 구분, A등급을 제외하고 등급별로 정원 감축을 권고했다. 총 권고 인원은 2만4000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변경됐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은 2018년 실시됐고 자율개선대학, 역량강화대학,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구분됐다. 역량강화대학과 재정지원제한대학은 정원 감축 권고 대상이다. 권고 인원은 1만 명. 차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은 2021년 시행 예정이다. 2021년 차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이 시행되면, 3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마무리된다.

대학구조조정정책은 학령인구(초등학교 입학 나이의 총 아동 수) 감소에 대비,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 현재 정원을 유지하면 일명 ‘문 닫는 대학’들이 속출한다.  따라서 교육부는 대학구조조정정책을 통해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면 지방대와 전문대에 미충원이 집중될 우려가 크다. 정원 감축 권고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가는 정부 주도의 정원 감축식 대학구조조정정책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 교수의 75%(응답자 기준)는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대학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평가권으로 대학을 통제하고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 국민들도 일률적인 정원 감축 방식에 부정적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2013년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14명을 대상으로 대학 정원 감축 방식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부실대를 폐쇄해 대학 수를 줄이는 방식’을 선호했다. 18%만이 ‘모든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방대가 대학구조조정정책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013년 대비 2018년 지역별 대학 정원을 비교·분석한 결과 전북은 정원이 무려 18% 감소했다. 전국 최다 폭이다. 이어 경북·충남 17%, 전남·세종 16% 정원이 감축됐다. 서울은 단 1% 감축에 그쳤다.

이찬열 위원장은 “지방대의 고사가 시작되면 인재는 더욱 수도권에 집중된다. 이는 수도권의 안정과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이 원칙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부 평가가 소위 ‘대학 살생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 교육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예고··· ‘대학 설립정신 실현과 교육역량 강화’ 초점 주문 = 현재 교육부는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폭넓은 의견 수렴, 충실한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방안을 확정·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올바른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의 방향은 무엇일까?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자. 권오병 경희대 교수(전 전국대학기획처장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미국은 민간 비영리단체인 교육인증협회(CHEA; Council for Higher Educations Accreditation)가 대학인증평가를 주관한다고 한다. CHEA는 대학의 사명과 목적, 발전계획, 교육프로그램, 교수·학생, 교육시설·재정 등으로 대학을 평가한다. 또한 대학 성과와 지원을 연계하기 위해 ‘성과재정모형2.0’이 시행된다. 영국은 고등교육평가원(QAA;Quality Assurance Agency for Higher Educations)을 중심으로 영국 고등교육 품질기준(The UK Quality Code for Higher Education)에 따라 대학인증평가가 실시된다. 평가 대상은 학위수여기준(학습 성과 포함), 교육품질기준, 정보제공기준 등이다.

권오병 교수는 “미국은 어떤 학생이 입학했나보다 어떤 인재가 돼 졸업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고 이를 대학 재정 지원에 활용한다”면서 “영국은 대학의 유형별 특성과 다양성을 중시한다. 평가뿐 아니라 보고서 작성 등 평가 준비를 위한 컨설팅도 실시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대학구조조정정책이 정부 주도의 정원 감축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보다 대학의 특성에 따른 설립정신 실현과 교육역량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학들이 설립정신 실현과 교육역량 강화에 맞춰 스스로 교육과정 개편,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원을 감축하지 않아도 대학들이 정원을 감축하거나, 다른 해결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오병 교수는 “고등교육 대응 당사자인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바람직한 대학구조조정정책 방향은 ‘대학이 자신의 건학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 ‘대학의 구성원이 얼마나 긍지를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좋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학이 최적화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